비록 그것이 명작은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그림 조각과 같은 예술작품은 도시의 콘크리트화로 어쩔 수 없이 황폐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순화시킨다. 문화예술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기에 살기 좋은 도시란 생활의 편리함 뿐 아니라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는 그런 곳이라야 한다. 도시의 매력 가운데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대화할 수 있는 푸른 공간이 있다. 인정어린 훈훈함이 있어야 하고 옛것과 새것이 거리 곳곳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천을 보자.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줄 수 있는 공간, 정서와 낭만의 거리가 얼마나 있는가. 단적으로 말해 너무 획일적이며 죽은 도시라는 비판 앞에 한치도 자유로울 수 없을성 싶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나 우리의 후세에 있어 불행한 일이다.

 인천의 도시환경은 오늘에 와서도 30년전과 견주어 볼때 몸집만 커졌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경제효율을 위해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삭막한 도시로 뒷걸음질 치고 있지 않나 반성해 본다. 한국도로공사가 경인고속도로 확장공사(남구 도화동 구간)를 하면서 불과 6m 넓이의 측도를 사이에 두고 콘크리트 옹벽을 쌓았다. 하루 종일 비치던 햇볕을 옹벽이 가로막는 바람에 이 일대 5천여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우중충한 지하실에 사는 것과 다름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도로변 2층 단독주택에 사는 어느 주민은 수용소에 갇힌 처지와 다를 바 없이 되어버렸다는 푸념이다. 옹벽의 높이가 자그만치 10m나 된다니 그런 하소연이 나올 만도 하게 됐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주민들은 미관과 정서만이라도 살릴 수 있도록 옹벽에 벽화를 그려줄 것을 공사책임을 맡고 있는 도공측에 건의했다. 그리고 인천시로부터 구간별로 벽화가 그려진다면 사후관리를 맡겠다는 의사를 받아냈다. 그러나 정작 도로공사에서는 완공일정에 쫓겨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고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를 들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주민의 소망은 극히 간결하다. 일조권을 따지며 상응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요컨대 장소의 특성에 맞게 도시거리를 바꾸어 나갔으면 바랄 것 없다는 소박한 것이었다. 그들의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