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여름, 축현국교가 진행한 '낙도' 용유도 어린이초청 견학프로그램. 과연 도시가 아직도 섬에 비해 '선진지'일까하는 의문이 든다.

외딴섬 아이들 바깥세상 구경 '재미 쏠쏠·추억 차곡차곡'
말도 아동, 서울 발길 … 신문사 방문 문화체험 … 리라校 학생 홈스테이도
장봉·신도초교 전교생 45명 '조류보호협회' 후원따라 민속촌 등 둘러봐


'낙도(落島)'의 사전적 의미는 '뭍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이다. 과거의 시선은 물리적 거리와 문명의 혜택은 반비례한다고 보았다.

정부나 기업은 외딴 섬 주민을 고립적 존재로 간주하고 그들에게 문화적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애썼다. '낙도 어린이 서울나들이'는 그 일환이었다.

90년대 까지 인천 앞바다의 섬은 대부분 '낙도' 취급을 받았다. 1966년 10월 초 서해상 휴전선과 맞닿은 섬, 말도(강화군 서도면) 어린이 31명은 공군이 내준 배편으로 인천에 도착한 후 3박 4일 일정으로 서울 구경을 했다.

동아일보사를 방문한 어린이들은 섬 안에 7대 밖에 없는 라디오로 방송은 들어보았지만 신문을 처음 대하고는 무척 신기해했다. 말도에는 신문을 구독하는 집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당시 부잣집 아이들 학교로 알려진 서울리라국교 어린이들 가정에서 분산 숙박했다. 요즈음 말하면 홈스테이인데 섬 아이들은 답례로 자신의 부모들이 말도에서 캔 굴 한 망태기를 전달했다.

낙도만 오지(奧地)가 아니었다. 첩첩산중 두메산골도 오지 중의 오지였다. 강원도 산간벽지 아이들의 서울나들이 코스에는 인천 바다 구경이 포함되곤 했다.

74년 5월20일 강원도 치악산 기슭 일론분교 46명 어린이들은 럭키(현 LG)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창경원, 남산공원, 방송국 등을 둘러본 후 인천에 도착해 바다와 도크를 구경했다. 생전 처음 배를 본 아이들은 "배 위에 또 집이 있네"하고 연신 탄성을 질렀다.

정규남 인천시장은 아이들에게 세계아동문학전집을 선물로 주었다. 낙도 아이들의 뭍 나들이 프로그램은 기업 이미지를 위해 주로 기업체들이 주관했지만 특별한 인연으로 아이들을 초청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67년 4월 베트남 주재 한국인기술자 2000여명은 성금을 모아 을릉도와 진도 어린이 60명의 서울나들이를 진행했다. 아이들이 베트남으로 위문편지를 쓴 것이 인연이 되었다. 이날 그들이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어린이 밴드부의 우렁찬 환영을 받았다. '오지랖 넓은' 인천신흥국교 밴드부를 선두로 아이들은 중앙청 까지 행진했다.

조류가 인연이 돼 인천 섬 아이들이 서울 구경을 한 적도 있다. 98년 5월26일 천연기념물 361호로 지정된 노랑부리 백로 서식지 장봉도의 장봉초교와 신도초교 전교생 45명은 한국조류보호협회의 후원으로 2박 3일 동안 덕수궁, 남산타워, 용인민속촌 등을 구경한 후 전국농업지도자연수원에서 숙박했다.

낙도와 산간벽지 아이들의 청와대 초청 방문은 정권 홍보 차원에서 좋은 소재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매년 5월 거의 거르지 않고 진행되었다. 심지어 연말에 유행처럼 진행되었던 인기가수 디너쇼는 '불우이웃돕기'라는 타이틀이 항상 붙었는데 수익금을 낙도 어린이와 소년원에 주로 전달했다. 낙도 어린이가 불우이웃의 범주에 포함되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7·80년대 까지 인천의 섬 학교는 창영국교 청라분교, 송현국교 세어분교 등 처럼 대부분 도시 학교의 분교 형태였다. 본교가 분교나 농어촌 학교 학생들을 초청해 도시 구경을 시켜주곤 했다.

사진은 83년 8월8일부터 10일까지 축현국교 초청 용유국교 학생들의 도시 나들이 모습이다. 30년이 지난 현재 축현초교는 학생 수가 점점 줄어 연수구 옥련동으로 이사 갔고 영종국제도시 내에 속하게 된 용유초교는 무의분교를 둘 만큼 성장했다.

최근 인천일보에서 발간한 '2015 인천연감'을 보면 인천지역의 분교 상황은 다음과 같다.

대청초 소청분교, 인천공항초 신도분교, 인천남부초 이작분교, 삼목초 장봉분교, 용현남초 자월분교, 주안남초 승봉분교, 영종초 금산분교(운북동), 용유초 무의분교, 계양초 상야분교, 서도초(주문도) 불음분교 등이다. /유동현 인천시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