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훈철 경기본사 문화부장
▲ 양훈철 경기본사 문화부장

오는 10월 8일 개관하는 수원시미술관의 명칭 문제와 관련해 수원시와 시민단체의 갈등이 정면충돌로 치닫는 치킨게임의 양상을 띠고 있다.

미술관 이름논란은 현대산업개발이 공사비 300억 원을 들인 건물을 수원시에 기부채납하면서 자사의 아파트 브랜드 명칭을 붙여줄 것을 요구했고 시에서 이를 수용하며 촉발됐다.

최근 시가 미술관 주변에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라 명기된 도로표지판 3개를 설치하자 '수원공공미술관 이름바로잡기 시민 네트워크'(이하 수미네)는 수원시미술관 앞에서 "시민 혈세로 아이파크 홍보하는 수원시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수미네에 참여한 시민활동가들은 뜨거운 땡볕 아래서 땀을 흘리며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역의 숙원사업이니 대기업의 돈을 받고 이름쯤은 줘도 괜찮다는 일각의 목소리도 있고 무엇보다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시와 협상을 벌이기가 힘겹다.

기회 있을 때마다 거버넌스를 강조하며 민관이 함께 풀어가는 행정을 지향한다던 수원시가 이번에는 시민단체와의 대화에 소극적이다. 공공성보다는 실리를 택한 염태영 수원시장의 입장은 현재 요지부동이다.

수미네의 주장은 이렇다.

"수원시는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라는 명칭을 현대산업개발에 20년 간 보장해 줄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앞으로 시가 제작하는 모든 지도와 안내판, 공문서에 이 이름이 명기되면, 현대산업개발은 세계문화유산의 그늘에서 막대한 홍보 효과를 누리게 된다. 시는 현대산업개발 측과 성의 있는 대화를 진행한 흔적도 없이 어이없는 명칭을 기정사실화하려는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

문화연대의 원용진 공동대표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공공영역이 사유화되는 추세를 '수원효과'라고 부른다"고 꼬집는다. 수원시가 전국적으로 나쁜 선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 대표는"사정이 이와같은데 염태영 시장은 보여지는 업적에 급급해 밀어붙이기 행정을 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한다.

불통으로 답답해진 수미네는 수원시에 ▲현대산업개발과의 협의 과정 공개 ▲도로표지판 철거 ▲공공시설 명명권 조례 제정 등을 요구하는 한편 경기도와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할 방침이다. 하지만 수원시는 현재 '명명권을 주기로 한 약속을 번복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시 미술관추진단 관계자는 "현대 쪽과 계속 접촉하고 있다. 공문도 보냈고 대화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에서 확정적 답변을 않고 있다. 이미 첫단추를 꿸 때 이름권한을 준 셈이라 중간에 바꾸기가 어렵다. 선경도서관과 수원중앙도서관, SK아트리움이 기부채납될 때는 명칭문제가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술관 이름이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이번에 수미네의 문제제기로 인해 사태의 심각성을 깊게 느끼게 됐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을 추진할 때는 같은 방식으로는 안할 것이다. 명명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알겠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수원시는 시민단체로부터 비난을 받더라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고 시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노한 시민단체는 싸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공을 쥔 수원시가 대안을 제시하고 시민단체와의 대화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이상 미술관 명칭문제는 길고 지루한 싸움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양훈철 경기본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