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네 아버지 만나 여태까지 고생 없이 살았다. 거기다 할머니가 동생들마저 키워 주시는 덕에 직장생활도 잘하고 있단다.

 기런데 말이다, 이 엄마도 이제 나이가 드니까 그런지 자꾸 기력이 딸리고 객지에 나가 있는 너희들 생각만 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구나. 너는 군대복무 하느라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집도 그 동안 변화가 많았다. 너 초모될 때 고등중학교에 다니던 누이 인숙이는 평양 외국어대학에 들어가 불어를 공부하고 있고 셋째 인영이는 평양 제1고(영재교육기관)에 들어갔다. 집에는 막내 인화뿐이다.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네 누이 인숙이와 셋째 인영이는 배고프면 평양 작은아버지 집에 가서 맛있는 것 실컷 얻어먹고 온다는데 넌 어더렇게 지내니? 배고프지는 않니?

 너 초모되어 군대복무 할 동안 아버지는 참 잘 되셨다. 중좌에서 상좌로(우리의 중령과 대령 사이의 계급) 한급 올라가셨다. 국가정치보위부에 근무하시는 둘째 작은아버지는 지도원이 되셨다. 엄마는 아직도 군 인민병원 외과과장으로 있다. 할머니는 평양 작은아버지 댁에 계시다. 요사이는 우리 집으로 오셔서 인화 거두어 주시면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단다.

 인구야, 부디 집안 걱정은 하지 말고 군대복무 마치는 그날까지 높은 사람들 말씀 잘 들으며 충실하게 복무하라. 당 생활과 사상학습도 잘 하면서.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북쪽에선 중국이 자본주의와 손잡고 수정주의로 나가고, 남쪽에선 전두환 역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도발책동을 일삼고 있어 우리 공화국은 중대한 시련기에 직면해 있다는구나. 이런 어려운 시기일수록 너는 간고한 사상투쟁을 통해 새로 태어나야 하느니라.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너희 아버지를 안전부장장으로 임명해 우리 공화국에선 가장 복 받은 땅으로 평가되는 낙원군 은혜읍으로 보내주신 게 다 누구 그늘이냐. 조국해방전쟁(6^25 전쟁) 시기, 너희 할아버지께서 조국과 인민들을 위해 한 목숨 바치셨기 때문에 두 삼촌들도 다 보장받는 직장에서 억세게 당 사업을 추진하시고 계시잖니. 너는 할아버지의 거룩하신 희생과 아버지의 투철한 사명감을 이어받은 후손답게 조국의 품안에서,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보위하는 총창(총과 창)이 되어, 하루하루의 생활도 빈틈없이 하는 자랑스러운 이 어미의 자식이 되어다오. 이 어미, 매일 새벽 하늘에 뜬 달과 별을 바라보며 이렇게 빌고 있단다.

 갑자기 복받쳐 오르는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해 소리 죽여 흐느끼는데 저 밑 아파트 앞마당에서 딸랑딸랑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정남숙은 그때서야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며 고개를 들었다. 희붐하게 날이 밝아왔고 아파트 입구 경비초소 앞에서 인민반장이 아침청소를 하러 나온 세대주들을 불러모으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남숙은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