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털어 버리고/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그래도 일할은 된다고 생각할때/옷벗고 눈에 젖은 나무여/네 뜻을 알겠다/포근한 12월을/친구여/어디서나 당하는 그/추위 보다 더한 손해를/너는 저 설목 처럼 견디고/그리고 이불을 덮는 심사로/네 자리를 덥히며 살거라〉. 박재삼 시인의 "12월에"이다.

 새해가 되었다며 새 달력을 걸고 새 다짐을 한 것이 엊그제의 일 같은 느낌인데 어느새 한해의 끝이다. 경진년 용의 해는 저물어 조용히 가고 마지막 남은 달력장도 새 것으로 바꾸어 거는 때이다. 내일 모래면 일년중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지요 그래서 이때쯤이면 일조량도 적어 기온은 떨어지고 눈발이 흩날리는 것은 당연하다. 한해중 가장 어둡고 우울한 계절, 그런중에 마음만 설레게 한다. 그래서 모파상은 12월을 일러 "검고 한해의 맨 밑바닥의 어두운 구멍"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찌 보면 12월은 포근하고 정겨운 달이다. 불우한 이웃을 돕자는 온정의 손길이 넘쳐나는 것도 이때요 땡그렁땡그렁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적선을 기대하는 것도 이 계절의 세시기이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선물을 주고 받으며 감사하는 고은 마음이 울어나는 것도 이때쯤이다.

 그리고 한해의 농사를 마친 농촌의 인심도 크고 넉넉하다. 눈이라도 펑펑 쏟아지는 날이면 어느새 마음은 그같은 고향의 흰 벌판을 달려간다. 지금쯤 고향에선 어른들이 한해 추수를 건사하고 아이들은 화롯가에 모여 조손간에 두런두런 이야기의 꽃을 피운다. 그것을 농가월령가는 이렇게 노래했다. “자란아이 글배우고 어린아이 노는소리/여러소리 지꺼리니 실가의 재미로다.” 다만 경제사정이 어렵고 농촌이 피폐한 오늘날 훈훈하고 풍성한 분위기를 내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한해의 끝달인 만큼 12월이 무심할 수가 없다. 여러가지 정리해야 할 미완의 아쉬움이 있고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여 서로 도우며 지내야 함도 생각케 된다. 주변과 서로를 생각하는 것-이것이 사람의 이치요 생각하는 이치요 생활의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