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산은 인천과 시흥시를 가르는 경계의 산이다. 이 산을 중심으로 해서 북으로는 부평의 계양산과 마주하고 서쪽으로는 인천의 주안산 청량산 동남으로 안산의 군자봉을 바라보고 있다. 비록 높이가 299m에 불과하지만 비교적 평야지대에 위치함으로 해서 멀리서도 우뚝 솟아 보이는 인천의 진산이었다.

 이곳 일대의 지명이 소래이듯 산 이름도 소래산인 것은 서기 660년 백제를 정벌한 당나라 소정방에게서 유래한다고 한다. 즉 그가 중국에서 출진한 곳이 산동반도의 내주이며 이곳에 와서 머물렀다고 해서 소래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진로를 보면 중국을 떠난 정복군은 덕적의 소야도를 거쳐 당진에 상륙했으며 그래서 지금 그곳은 당진이 되었다.

 그러니 아마도 그것은 당군의 원정을 사대적으로 미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설일 듯 하다. 변산반도의 내소사에도 흡사한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 조상들의 중심되는 거룩한 땅을 이른 "솔"에서 어원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솔" 혹은 "솔뫼"는 "소슬뫼"의 와음이며 머리되는 산을 뜻하는데 오늘날의 소래산 수리산 소홀면 등이 그 흔적이다. 아무튼 그 때문일까. 산 기슭에는 대소의 명당이 많다. 그 중에 세종조 영의정을 지낸 하연의 묘소도 있으며 그에 얽힌 전설도 전한다.

 그런데 산중의 병풍바위에 선각된 향토유적 14호 마애여래입상이 국가보물로 지정되었다는 보도이다. 이 여래상은 고려초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머리에 쓴 연화문의 보관이 서역의 것과 같다고 해서 그곳과의 교류가 시사되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 그런가 하면 그같은 대규모의 여래상이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이 지방(인주)의 호족 세력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불교가 국교였던 만큼 호족들이 다투어 사찰을 창건 불사를 열어 세를 과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풍화가 진행중이어서 형상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모가 심하다고 한다. 문화재의 의미는 무엇이며 국가보물 지정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선인들의 숨결이 서려있는 흔적을 간수함이 후손들의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