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겁게 끝난 '두 완생'의 역사적 대결
▲ 조훈현 9단(오른쪽)과 조치훈 9단이 이세돌 9단과 함께 승부처를 짚어보며 복기하고 있다.

머리에 내려앉은 백발이 말해주듯 세월 탓인지….

1980∼90년대 세계 바둑계를 호령했던 조훈현(62) 9단과 조치훈(59) 9단의 '반상 전설의 맞대결'에서 조훈현이 시간승을 거뒀다.

조훈현 9단은 26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1층 바둑TV스튜디오에서 벌어진 '한국 현대바둑 기념 대국'에서 조치훈 9단이 초읽기를 놓친 탓에 154수 만에 시간승했다.

각자 제한시간 1시간, 40초 초읽기 3개로 진행된 이날 바둑은 중반까지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다.

실리파로 잘 알려진 조치훈 9단이 이례적으로 양화점 포석을 들고나와 초반부터 조훈현 9단의 하변 대마를 공격하며 반상의 주도권을 잡았다.

쫓기던 조훈현은 우변 손해를 감수하고 대마 탈출에 성공한 뒤 하변 흑 대마 역공에 나서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하변 싸움이 일단락된 뒤 상변 접전에서는 조훈현이 우상변과 상변에 집을 확보한 반면 조치훈은 좌상변 대마를 잡아 다소나마 우세하게 국면을 이끌었다.

미세하게 앞선 조치훈이 중앙 흑 대마만 큰 문제없이 수습하면 결승점이 보이는 순간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조훈현이 중앙 흑 공격을 시작했으나 '타개의 천재'라고 불렸던 조치훈 9단이 어렵지 않게 수습할 것으로 예상되던 시점이었다. 제한시간을 다 쓰고 마지막 초읽기에 몰린 조치훈이 계시원의 '열' 소리와 함께 돌을 놓은 것. 바둑 규정상 대국자는 계시원의 마지막 '열' 소리가 들리기 전에 착수를 해야 하며 만약 초읽기의 마지막 '열'이 나오면 시간패가 선언된다.

양대국자 모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고 공개 해설장을 가득 메운 바둑 팬들 사이에는 아쉬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날 공개 해설을 맡은 유창혁 9단이 "두 기사의 승부는 초읽기에서 결정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뜻밖의 시간패가 발생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친선 대국'인 만큼 대국을 계속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이번 대국의 심판을 맡은 김인 9단이 두 기사의 의견을 물은 결과 조치훈 9단이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이로써 두 기사의 상대전적은 일본기원 시절과 비공식 대국을 포함해 조훈현 9단이 9승5패로 앞서게 됐다.
두 기사는 대국이 끝난 후 30여분간 공개 해설도 하며 바둑 팬들과의 만남의 시간도 가졌다.

2003년 10월 삼성화재배 8강전 이후 12년 만에 성사된 두 거장의 대결은 바둑 팬들의 오랜 염원을 담아 한국기원이 현대바둑 70년을 기념해 주최했다.  


/연합뉴스·사진제공=한국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