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 잠에서 깨어나라]
제물포상권 얼어붙어 곳곳 임대문의
배다리·용현시장 자생노력 소기성과
활력 열쇠는 공공디자인 등 시민참여
▲ 지난 3일 인천시 남구 제물포지하상가에 수 십여곳의 상가가 문이 닫혀 있다.


인천은 구도심과 신도심 간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갯벌을 매립해 조성된 송도 신도시는 고층 빌딩으로 밀집해 있어 저녁만 되면 화려한 불빛으로 물든다.

반면 남구 제물포 등 원도심 지역은 사람들이 떠난 채 공·폐가가 늘어나면서 감염병 발생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경제적 불균형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떠오른 대안은 주민 참여다.

정부와 지자체 등이 활성화 사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고, 그 지역에 사는 주민이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 개선해 나가면서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인천의 대표적인 구도심 상황을 알아보고, 주민 참여로 다시 활력을 찾아가고 있는 지역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활기 잃어버린 제물포

지난 3일 찾아간 인천 제물포 북부역은 예전에 명성을 되찾아 볼 수 없이 한산했다.

청운대학교가 방학을 맞이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낮에는 중·고등학생이, 오후에는 대학생들로 북적거려야 할 곳엔 사람들의 대화 소리마저 끊긴지 오래다. 제물포 지하상가에서 30여 년 전부터 속옷 장사를 하는 송(66·여)씨는 "상가에 사람들이 가뭄에 콩 나듯이 지나가기 때문에 사람 보기가 힘들 정도"라며 "전철 입구 근처가 아닌 곳에 위치한 상가는 거의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64개 제물포지하상가 중 109개가 공실이다. 상가를 둘러본 결과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임대문의'라는 글이 곳곳에 붙여져 있을 정도다.

지상 상권도 상황은 마찬가지. 북부역에서 구 선화여상 부지로 이동하는 100여m 거리에 위치한 상가도 듬성듬성 비었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쓰고 버린 가구도 나뒹굴고 있었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해진 것은 지난 2009년 인천대학교 캠퍼스가 연수구 송도로 이전하고, 일부 고등학교가 연이어 외부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이후 점차 슬럼화됐고, 청운대학교와 제물포스마트타운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스쿨버스로 인해 지역 상권은 효과를 보고 있지 않다. 주안역에서 내린 학생을 바로 태워 학교 입구까지 데려다주다보니 제물포 상권은 매출에 어려움을 겪는건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상인회와 학교 측이 협의한 끝에 스쿨버스 노선에 제물포 북부역에도 정류장을 설치했지만 상황은 같았다.
김정덕 제물포북광장상인회 부회장은 "평균 20평이면 월세 시세가 150만 원 정도인데 제물포역 근처는 40~50만 원 수준"이라며 "거리를 살리기 위해 상가 주인이 피해를 보더라도 낮은 가격에도 거래를 하고 있지만 실거래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있는 지역인만큼 제물포가 예전처럼 사람이 북적이는 동네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구 배다리마을

▲ 인천시 동구 배다리마을의 아벨서점 전경.


인천시 동구에 위치한 배다리마을 거리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20~30년된 낡은 건물에서 60대 노인부터 엄마 손을 꼭 잡고 있는 7~8세 아이들이 함께 책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73년부터 배다리마을에서 아벨서점을 운영한 곽현숙 대표는 최근 2~3년 전부터 청년층 손님들이 책방거리를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는 "1일 평균 주중에는 100여명이, 주말에는 200여명이 이 곳을 찾는다"며 "인천 관광 투어에 배다리마을이 포함되고, 자발적으로 블로그를 통해 배다리마을을 홍보하면서부터 손님이 늘었다"고 말했다.

동구 배다리마을은 노동과 상업의 중심지었다. 지난 1960~1980년 대까지만하더라도 신학기만 되면 인천 도서 지역과 경기도 일대에서 책을 사기 위해 몰려든 학생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서울 등 타지역으로 이동하기 편리해지고, 양옥집이 보급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주민들은 점점 서울과 가까운 곳으로 이동을 하면서 인구는 점차 줄어들게 됐고, 서점도 5곳만 남아 상권도 시들해졌다. 시들어져가는 구도심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배다리마을의 주인인 주민들이 주인이 돼 문화마을로 탈바꿈하면서부터다. 배다리를 가꾸기 시작하려는 시민모임이 생기면서 곽 대표는 직접 리모델링해 서점 2층에 공간을 만들어 매년 책 전시회를 연다.

또 대안공간인 스페이스빔에서는 시각 관련 프로그램을 열고, 책방인 나비날다에서는 책쉼터를 만들었다.
곽 대표는 "어렸을 때 배다리에서 책을 샀던 추억을 되살리고자 베낭 하나 둘러매고 배다리 근처를 2시간 동안 둘러보는 어르신들이 많이 있다"며 "특히 보고싶던 책 한권을 구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점운영을 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구 용현시장

▲ 지난 3일 인천시 남구 용현시장 내 위치한 까페 '마실'에 시민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 3일 남구 용현시장은 반찬거리를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메르스 여파가 남아있어 평소보다 사람은 뜸했지만 시장 곳곳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상인과 손님 간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용현시장은 공식적으로 지난 1963년 설립됐지만 그 이전부터 수인선 주변에 자연으로 형성된 전형적인 원도심 골목형 시장이다. 타 지역의 전통시장처럼 특산품은 없지만 지역 주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인천에서도 가장 큰 시장으로 손꼽혔지만 최근 반경 1㎞ 이내 대형마트 2개가 들어서고, 주변의 용마루 재개발로 3000세대가 빠져나갔다. 용현시장은 여느 전통시장처럼 대형마트에 밀리고 소비환경의 변화로 자취를 감출뻔 했다.

하지만 시장을 이끄는 주인인 상인들과 상인회가 합심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용현시장 인근은 8000세대가 밀집해있고, 그 중 재개발로 3000세대가 빠져나갔다. 비율적으로 매출은 30%가 줄어야하지만 약 10%가 감소했다는 게 상인회 측 설명이다. 이 같은 이유는 30~40대가 주를 이룬 상인회가 형성돼 머리를 맞댄 결과다.

50대가 주를 이루던 상인회의 평균 연령이 낮아지면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매주 2회 용현시장 내 설치된 부스에서 DJ가 2시간 씩 상인의 소식을 전하는 방송을 하면서 마치 클럽같은 분위기가 형성된다.

특히 날아라 청년골목을 조성해 20~30대 상인을 유인하면서 젊은 손님을 장기적인 고객층으로 만들었다. 또 청년창업보육센터를 만들어 20여 명의 예술인에게 사무실을 내주고, 시장을 꾸미는 아이디어도 받는다.

이 같은 노력 끝에 용현시장은 전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시장 50위에 포함되기도 했다.

용현시장상인회 관계자는 "전통시장은 낡고 깨끗하지 않다는 편견 때문에 젊은 고객 층이 방문하지 않는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 참여가 정답

"구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주민의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자신이 사는 지역을 위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구도심은 활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

곽동화 인천대 도시건축학부 교수는 구도심에 사람을 이끌기 위해서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선 공공디자인은 이제 첫 발걸음을 내딛은 수준이지만 인천 등 전국 곳곳에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공공디자인은 주민과 이용자 입장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중심이 된 일반적인 디자인과 개념이 다르다.

곽 교수는 "이용자가 직접 프로젝트에 참여해 의사결정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다"며 "이처럼 공공디자인은 결과물보다는 과정을 더욱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인천시가 추진하는 공공디자인 활성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그는 지난해 시민과 공무원, 학생 등과 함께 동구 송림6동 활터마을을 대상으로 공공디자인 사업을 벌였다. 2014 도시재생대학 경진대회에서 국토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활터마을에 위치한 다양한 길에 각각의 이름을 붙이고, 특성에 맞게 길을 꾸몄다. 인근에 위치한 현대시장과 이어진 길은 활터장터길로, 산으로 이어진 길은 헐래벌떡길 등으로 평범한 길에 마을만의 이야기를 입혔다.

공공디자인 사업이 끝나자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자부심이 생겼다. 마을을 떠났던 주민들이 눈에 띄게 다시 되돌아오지 않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누적되면서 마을은 점차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곽 교수는 서울시의 장수·이화 마을 등을 좋은 사례로 손꼽았다.

낡고 오래된 저층 주택이 밀집한 곳이었지만 한 지역 주민은 마을이 갖고 있는 장점을 살리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형에 위치한만큼 서울의 아름다운 광경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관광객은 물론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떠올랐다.

곽 교수는 "지역의 특성과 장소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테마화하려는 것은 오히려 매력이 반감될 수 있다"며 "그 지역만의 유무형적인 가치를 발굴하고, 활용하는 게 가장 지속가능한 발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정회진 기자 hijung@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