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20년 외형적 '눈부신 성장...탄탄한 내실 다지기 위한 과제 남아

'인천(仁川, Incheon)'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3대 도시. 5000년 한반도 역사를 송두리 채 바꾼 근대사의 첫 페이지를 연 인천. 우린 인천을 통해 세계로 뻗어가고, 인천을 통해 세계를 담고 있다.

1995년, 인천이 다시 깨어났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인천은 위성도시 굴레에 줄곧 묶였다. 1995년 6월30일까지 인천은 '인천'이라 불렸지만, 인천만을 떼놓고 자치성과 독립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1995년 7월1일, 인천광역시가 탄생했다. 위성도시 인천이 아닌 대한민국 인천으로 거듭난 것이다. 여전히 위성도시란 속박에 부자유스럽지만, 인천은 홀로 서기 위해 생채기를 거듭하며 우뚝 섰다.

20년이 지난 2015년 7월, 세계사 어느 곳에도 유래를 찾을 수 없게 인천의 면적은 무려 3배 이상 컸다. 339㎢이던 인천 면적이 무려 1046㎢로 3.08배 늘었다. 인구는 220만에서 295만까지 폭발했고, 여러 지표에서도 인천의 성장은 괄목상대(刮目相對) 했다.

지금, 이 순간 인천이 논해야 할 가치는 무얼까.

300만 시민에게 '인천'을 물었다. 인천이 지속성장하기 위한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찾을까. 대다수는 인천의 답답함을 말한다. 뻗으려 해도 '법'과 '제도', '규제'가 인천을 막고 있다며 이 상태로는 신성장 인천의 엔진을 찾기 불가하다는 이유다.

인천은 지난 1994년까지 정부 속박 안에서 경제 성장을 일궜다. 경공업 중심의 인천이 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갔고 한국 발전의 기틀이 됐다. 회색 도시, 산업화 성장둥이 등의 온갖 수식어가 이 때 등장했다.

그리고 지방자치가 시작된 1995~2014년까지 20년, 인천은 몸부림쳤다. 다양화 사회로 진입한 세계에서 인천의 경공업 중심 경제 방식으론 지속 성장이 불가하다며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섰고, 인천경제자유구역이 탄생했다. 다시 인천에 자본이 몰리며 새로운 불야성이 됐다.

그러다 지자체 20년의 턱 앞에 멈춰 섰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의 문턱은 인천 발전의 진입을 막아섰고, 정부가 쳐놓은 규제는 인천의 저성장을 부채질 하고 있다.

스웨덴 다국적 통신 기업인 에릭슨이 인천경제자유구역 발전에 주목했지만 인천은 법과 제도, 규제를 풀지 못한다면 지자체 20년의 빛바랜 영화 속에만 갇히게 된다.

'위대한 인천 만들기'를 논해야 할 시점이 됐다. 지자체 20년을 걸으며 상처 많은 청년기를 보냈다면, 지속가능한 인천을 만들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인천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