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단체의 부녀회를 중심으로 성미(誠米) 모으기가 있었다. 원래 신에게 드릴 곡식을 모으는 현미행위였겠는데 절제와 자선운동으로 발전했다. 결국 절약생활을 선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성미는 글자 그대로 정성이 아니고서는 힘에 부쳤다. 생각으로야 쉽지만 여간 정성이 깃들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기가 어려웠다. 규칙적으로 한술 한술씩 뜨는 지성이라야 실패가 없었다. 이렇게 모아지는 곡식은 불우돕기에 요긴하게 쓰였다.

 여기서 확산되었을까. 농촌의 부녀회들도 한때 성미운동이 활발했었다. 농가마다 부엌에 성미단지를 꿀단지 위하듯 모셔놓고(?) 끼니때면 주부들이 몇술씩 쌀을 모았다. 식구수 대로 한술씩 하든지 적당한 양을 떠냈다. 가을 추수가 끝나기가 무섭게 논바닥에 나가 흩어진 이삭을 주워모으기도 했다. 쌀모으기를 한다니까 밀렸다가 한꺼번에 퍼내든가 해서는 「티끌모아 태산」의 정성이 깃들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모은 쌀은 다시 마을 단위로 모으고 결국 이것은 큰 덩어리가 되어 부녀회에서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쌀을 팔아 마련한 기금으로 마을시설을 하는데 보태기도 하고 중고교생의 장학금이나 마을 노인들 효도관광을 주선하기도 했다. 어느 마을에서는 성미를 시작한지 4개월만에 쌀 200가마니를 모아 심장병 어린이의 치료에 사용한 사례도 있었다.

 부평구민들이 전개한 「사랑의 쌀모으기」가 큰 성과를 냈다고 전해진다. 지난 9월24일부터 8일동안 벌인 동 행사에서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학생 주민 공무원등이 참여 한줌씩 보탠 쌀이 백가마니를 넘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①부녀회를 통한 절미운동 ②각급학교 교회 사찰의 쌀통 비치 ③지신밟기때 쌀담아주기 등으로 쌀을 모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부평구는 이렇게 모은 쌀을 추석에 앞서 경로당과 시설원등에 고루 나누어 준 바 있다. 비록 한줌의 쌀은 보잘것 없으나 선한 뜻을 모은 정성일때 커다란 힘을 과시한다. 부평에는 지난날 추석때마다 쌀을 보내주는 얼굴없는 자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