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섭 사회부장
7년 넘게 매년 한 두달 시간을 내서 실크로드를 돌아다녔다. 중국 서안을 시작으로 죽음의 타클라마칸 사막과 오아시스의 나라 중앙아시아, 내전과 테러가 빈번한 중동을 지나 발칸, 지중해까지 말이다.
아주 운이 좋게 전쟁과 테러도 피했고, 각 나라에서 유행한다는 일명 풍토병에도 걸려본 적이 없다. 한때 중국에서 유행했던 사스도, 요즘 중동에서 유행하는 메르스도 피해 다녔다.

하지만 지금도 실크로드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고대 실크로드 길을 대부분 따라가 봤지만 한 곳 이빨 빠지듯 빈 곳이 있다. 바로 이라크다.
이라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로 기원전 수천 년 전의 고대유적들이 가득한 곳이다. 실크로드 문명 기행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지금까지 직접 고대 문명의 현장을 볼 수가 없었다.

2010년 중동지역을 갈 기회가 있었다.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 3개국이다. 당시 어렵게 중동지역까지 왔으니 이라크를 한번 둘러볼 기회를 엿본 적이 있다.
당시 요르단 현지에서 운 좋게 이라크 로컬투어 가이드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생생한 이라크 현지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비용만 충분하다면 이라크 투어도 가능하다는 얘기에 귀가 번쩍 띄었다. 벌써 몇 차례 외국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 선교사들이 주 고객이라는 설명과 함께.

제안은 간단했다. 일주일 기준으로 1인당 경호비용 1000만원, 여행 경비는 별도다.
당시 2명이 실크로드 취재를 갔으니 경호비용만 2000만원에 여행경비까지 합치면 3000만원이 훌쩍 넘는 액수였다. 그래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다음 말에서 우리 일행은 고민에 휩싸였다.
최신형 방탄 차량과 경호 인력까지 대동하고 가면 생존확률이 대충 90%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90%면 안전하네, 음 갈만 하군" 하고 생각하다고 곧 바로 나머지 10% 가능성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폭탄 사고나 인질로 잡혀 죽을 확률이 10%에 달한다는 발 빠른 계산 앞에서 모든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죽음 앞에서는 어떤 계산기로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10%는 내 기억 속에 답답함과 아쉬움으로 오래 동안 남아있었다.

이젠 잊었거니 했던 10%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요즘 다시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메르스의 치사율이 10%가 된다는 뉴스를 연일 보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오전 8시 현재 메르스 확진자는 154명, 사망자는 19명에 달한다고 한다.
당초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의 메르스 치사율이 40%에 달한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그보다는 낮은 10%대를 유지하고 있다.

치사율 10% 앞에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어떤 정치인은 중동 독감 정도에 온 나라가 호들갑을 떤다며 망언을 일삼고 있다. 소비가 위축돼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얘기 정도는 오히려 애교로 들린다. 어떤 이는 밖에 나가면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공포에 휩싸여 있다.

난 그 10% 앞에 답답함을 느낀다. 아니 불편함과 함께 분노마저 느낀다.
사고 가능성 10%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이라크 방문을 포기한 것처럼 치사율 10% 앞에 또 다시 많은 것들이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이 말이다.
더구나 초기 대응만 제대로 했다면 아무도 죽지 않아도 되고 치사율 따윈 언급하지 않아도 됐을 상황이었으니 더욱 그렇다.

치사율 10%가 대수롭지 않다는 분들께 묻고 싶다. 현재 전쟁이 한참인 이라크나 시리아를 가라고 하면 가겠냐고. 치사율 10%가 장난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