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수필가

우리민족은 일찍이 유교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이점이 있으나 또 한편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았다. 특히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돼 오면서, 여성의 대명사인 어머니의 길은 고달프고 험난했다. 더욱이 여성에게만 강요했던 남존여비, 여필종부, 3종지덕(도) 등 사회분위기 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겪었다.

이처럼 극심한 남성 우월주의 문화가 여성을 억압하고, 예속화함으로써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의 아픈 추억이 불현듯 떠오르면 울컥해 진다. 실제로 '남아선호사상'이 사회 구조적인 남녀 불평등 문제를 야기했다.

이로 인해 마치 여성만의 덕목처럼 일반화됐던 부모효도, 남편내조, 자식교육, 친척우애, 조상제사, 손님접대, 가정살림 등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만 짐을 지우게 했다.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면, 현대사에서 가장 불행한 세대는 50~60년대 20살 전후 어린나이에 시집간 여성들이다. 그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우리 민요의 가사처럼 "고초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만 못 하더라"고 했던 애처로운 삶을 짐작할 수 있다.

어느덧 그분들은 80~90대가 됐다. 현재 생존해 계신 분도 있고, 대부분 이승을 떠났다. 당시 농경사회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바닥과 메말라가는 밭작물에, 한 방울물이라도 주기위해 물동이 하나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특히 6·25직후 삼시 세끼를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늘 허기에 시달렸으며, 주식은 꽁보리밥과 고구마 감자 등으로 연명했다. 옷차림은 광목천의 흰 저고리와 검정치마에 고무신을 싣는 게 고작이었다.

그뿐 아니다. 추위도 채가기 전, 초봄에 겨울에 입었던 옷가지들을 한 광주리 그득 담아가지고 시냇가에 나와 얼음장을 깨고, 널찍한 돌 위에 빨랫감을 놓고, 방망이로 힘껏 두들겨 패서 때물을 뺄 때, 손끝을 바늘로 찌른 듯한 추위의 아픔을 느꼈다.

또 땔감을 구하기 위해 겨울 산에 올라가 낙엽과 마른 나뭇가지를 꺾어, 한데 묶어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내려와 밥을 짓기도 했다. 때론 산감(山監)에 적발되어 혼 줄도 나고, 밉보이면 벌금도 물었다. 더욱 서러운 일은 여성은 많이 배우면 안 된다며, 초등학교만 졸업시켜 가사노동을 책임지게 했다. 지금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발전하였다.

이제는 여성에 대한 인습과 편견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냈고, 편리한 문명이기는, 우리 생활문화에 놀라운 변화를 초래했다. 빨랫감은 세탁기에 넣어, 버튼만 누르면 손쉽게 해결되고, 음식조리는 전기밥솥과 가스렌지가 도와준다.

옷가게에는 유행 따라 계절 따라 멋진 옷들이 수북이 쌓여있으며, 신세대는 고급브랜드만 선호하는 세태다. 또한 먹을 것 마실 것이 넘쳐난 풍족한 세상이다. 게다가 우리사회의 패러다임도 달라졌다. 아들을 못 낳으면 냉대와 멸시를 받고 구박도 당했으나, 근래 들어 아들보다 딸이 효도한다며, 득녀해도 실망치 않는다.

과거처럼 아들 선호시대는 지난 것 같다. 종종 사회문제가 된 부모에게 폭언과 폭행의 패륜은 대부분 남성이 아닌가. 현실은 여성의 인격, 존엄성, 기본권에서 동등해야 된다는 양성 평등시대를 지향하고 있다. 남성이 권위적이고 여성하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자체가 어리석다.

현대사회가 남녀평등에 공감하고, 불평등한 사회문화적 폐습과 모순을 타파하고자, 점차로 성 차별적인 법과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는 점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제적인 수준에 비하면 낮은 편에 속한다.

이웃 중국은 어떤가. 1949년 모택동 주석이 남녀평등을 선포했다고 한다. 중국가정을 방문해보면, 남편들이 부엌에서 요리하며 아내를 돕는다. 우리 가정에서는 흔치 않는 모습이다. 따라서 중국여권 신장은 서양과 비교해도 상당히 앞서 있다고 한다. 섬나라 일본은 기대와는 달리 우리보다도 여성지위가 뒤떨어졌단다.

남성이 더 이상 여성을 깔보고, 대접만 받으려는 것은, 이미 한물간 빛바랜 구태다. 현재 한국도 국민의 선택에 의해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여성도 자질과 능력이 있으면, 국가 최고의 통치권자도 될 수 있잖은가. 우리는 이제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사안을 외면하거나 침묵해선 안 된다.

남녀가 함께 고민하면서 높은 차원의 사회 환경으로 승화시키면 행복은 배가된다. 흔히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고 했잖은가. 현대사회는 여성위상이 빠르게 진화하고, 남성권위는 퇴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공동체는 더욱 인간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향후 진정한 건강사회는 여성 상위시대도 아니고, 남성 우월주의도 아니다. 서로가 윈윈하는 '남녀 평등주의'가 딱 맞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