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환 편집국장
백종환 편집국장

말하는 것(言)과 듣는 것(聽)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덕목일까. 말 만큼 인간 삶과 밀착된 것은 없다. 말 없이 생활하기가 사실상 곤란하다.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쓰기-읽기-말하기 보다 초보적 단계다. 그런데 이게 가장 어렵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은 의사소통의 기본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가볍게 여기고 산다.

말하는 것부터 보자. 현대인들은 언변을 중요시한다. 설득력있는 말솜씨를 갖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화려한 말솜씨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대중을 휘어잡는 웅변을 통해 나라의 통치권을 거머쥔 사례도 무수히 많다. 말의 묘미는 촌철살인에도 있다.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감동시키거나 조롱거리로 만들 수 있다. 말이 가진 힘이다.

그러나 선조들은 함부로 내뱉는 말을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보고 늘 경계했다.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요설(饒舌)이나, 길게 늘어놓다 시비를 불러오는 장설(長舌)을 멀리했다.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을 현하지변(懸河之辯)이라 부른다. 천구(天口)도 타고난 입담꾼을 일컸는다. 말은 긍정 보다는 부정의 의미가 더 많다. 내용이 가식적인 교언(巧言)과 이치에 맞지 않는 망언(妄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후당 때 입신해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라는 정치가가 있다. 풍도는 당나라가 망한 뒤 진, 글안, 후한, 후주 등 오대십국의 혼란기에도 다섯 왕조에 걸쳐 열한명의 임금을 섬긴 처세의 달인이다. 풍도는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를 자신의 처세관으로 삼았다.

항시 입조심 말조심하는 처세가 난세에도 영달을 거듭 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말이 넘쳐나는 요즘세대에 특히 귀담아 들어야 할 얘기다.

듣는 것을 보자. 들을 청(聽)자는 임금(王)의 귀(耳)와 열개(十)의 눈(目)과 마음(心)을 하나(一)로 집중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그만큼 듣는게 어렵고 중요하다는 뜻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가가 후손에게 남긴 유언도 경청(傾聽)이었다. 남의 얘기를 귀기울여 들으라는 충고인 셈이다. 지혜는 들음으로써 생기고, 후회는 말함으로써 생긴다는 영국속담은 경청의 중요성을 함축하고 있다.

이청득심도 상대방의 말을 귀 성의있게 들어주어야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의 법학자 올리버 웬델홈즈는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미국 여성사회운동가 도로시 딕스도 남을 설득하는 지름길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귀를 여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는 것은 기술이지만, 듣는 것은 예술이다.

사람의 입은 하나지만 귀가 둘인 것도 말은 아끼고 더 많이 들으라는 이유에서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내가 무슨말을 했느냐 보다 상대방이 무슨말을 들었느냐가 더 중요하다.

오늘은 만우절이다. 서양에서 유래한 풍습으로 '에이프릴 풀스데이(April Fools' Day)'라고 한다. 요즘에는 가벼운 장난이나 농담으로 웃음을 주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악의 없는 거짓말을 하고, 그걸 들어주고 웃어넘기면 된다. 해외 유명 언론은 가끔 황당한 만우절 특집 기사를 게재해 대중이 혼란에 빠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얼마전 미국의 한 유머사이트에서는 이런 일화들을 모아 세계 100대 거짓말을 선정하기도 했다. 1957년 영국 BBC가 스위스에서 이상기온으로 나무에 스파게티가 열렸다며 이를 수확하는 농부의 사진을 보도한 일이나, 1985년 미국 일러스트레이티드가 뉴욕 메츠에서 시속 270㎞의 강속구 투수를 영입한다고 보도하는 식이다.

정론직필을 생명처럼 여기는 우리의 언론 현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우절에 엄청난 뻥튀기 기사를 게재하는 해외 언론의 배짱도 놀랍지만, 이를 그냥 즐기는 독자들의 여유가 더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