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고구단 변천사

삼미 원년꼴찌..만년 하위권

현대인수뒤 첫해 준우승 돌풍  82년 지역연고권제로 출범한 한국프로야구는 당초 6개 구단으로 출범했다.

 프로야구 원년 삼미슈퍼스타즈의 주연고지가 된 인천은 그동안 네차례나 주인이 갈릴 정도로 구단매각이 가장 많았던 지역.

 인천의 첫 구단이었던 삼미슈퍼스타즈는 왕년의 홈런왕 박현식씨를 감독으로 내세워 출범했지만 우수선수 부재로 82년 15승65패로 꼴찌를 면치 못했다.

 삼미는 이듬해인 83년 재일동포 장명부투수를 영입, 돌풍을 일으키며 선전했지만 시즌을 3위로 마감하는데 그쳤다.

 삼미그룹이 청보그룹에 구단을 매각, 85년부터는 청보 핀토스시대가 열렸다.

 당시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청보그룹은 구단을 인수하면서 희망찬 출발을 다짐했지만 역시 적자난에 허덕이며 85년 6위를 비롯해 3년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88년 다시 태평양그룹에게 팀을 매각했다.

 인천의 세번째 연고팀이 된 태평양돌핀스는 김성근감독을 앞세워 89년 페넌트레이스 3위를 차지, 준플레이오프전에서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 진출을 위한 플레이오프전을 해태와 치렀지만 해태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세번째 사령탑인 정동진감독이 이끌던 태평양은 94년 드디어 인천연고 구단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태평양은 그 해 승률왕을 차지한 김홍집 등 두터운 마운드를 내세워 인천연고팀 첫 우승을 노렸던 그러나 파트너였던 LG트윈스에게 4대0으로 완패,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인천 연고팀으로는 7년간이나 주인이 됐던 태평양 돌핀스도 96년에 와서 팀을 현대구단에 넘기며 현대 유니콘스 시대로 돌입했다.

 89년 MBC청룡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 그룹내 사정으로 인수를 포기하기도 했던 현대는 90년대에 들어서며 프로야구가 활성화되자 다시 프로야구팀 인수에 관심을 보였고 이 가운데 구단매각설이 나돌던 태평양 돌핀스를 파격적인 가격 4백70억원(부채 70억원 포함)에 인수하며 막강그룹 현대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힘있는 야구를 표방한 현대는 태평양의 수석코치였던 김재박씨를 초대 감독으로 선임하고 해태 연고의 박재홍을 4억3천만원에 현금트레이드 해오는 파격적인 선수스카우트를 감행하며 창단 첫 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대는 해태와 펼친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정명원이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작성하며 선전했지만 결국 4승2패에 머물러 정상정복에는 실패했다.

 지난 해에는 2년차 징크스를 톡톡히 겪어 시즌을 7위로 마감한 현대는 올시즌에 들어서는 가장 문제가 됐던 내야수비와 포수진영을 보강했고 신인발굴과 우수투수 영입으로 투타공수에 걸쳐 최강의 전력을 구축했다.

 이같은 구단의 파격적인 투자로 현대는 올시즌에서 당당히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LG트윈스를 물리치고 프로야구 17년 사상 인천 연고팀으로는 첫 우승을 차지하는 개가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