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31)성현(成俔)과 부평
▲ '허백당집(虛白堂集)'의 중도부평야문우용운(重到富平夜聞雨用韻)
성현(成俔, 1439~1504)은 조선 전기의 관료문인이다. 자는 경숙(磬叔), 호는 허백당(虛白堂)·용재(?齋) 등으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염조(念祖)의 자식이다. 1462년(세조 8) 식년문과에,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 급제한 후 벼슬길에 올랐다. 문장, 시, 그림, 인물, 역사적 사건 등을 모아놓은 《용재총화(?齋叢話)》를 저술했으며, 의궤(儀軌)와 악보를 정리한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하는 데 참여했다. 문집으로 《허백당집(虛白堂集)》이 있다.

 그는 포천에 있는 고조(高祖)의 묘(墓)를 다녀오면서 '수원 ~ 부평 ~ 강화 ~ 포천 ~ 부평'의 노정을 밟으며 방문한 곳에 대해 시문을 남겼다.
 
 <부평 헌운에 차하다(次富平軒韻)>
 渺渺西京府(묘묘서경부) 아득한 곳에 있을 서경부
 茫茫大野東(망망대야동) 큰 들판 동쪽은 넓디넓기만 하네
 禾田縱橫畝(화전종횡무) 논밭 이랑이 종횡으로 펼쳐 있고
 山色有無中(산색유무중) 산빛은 있는 듯 없는 듯하네
 雀?千村日(작조천촌일) 해질녘 온 마을에 참새 지저귀고
 牛橫一笛風(우횡일적풍) 소 옆으로 젓대 소리 날아드네
 驅馳竟何益(구치경하익) 말을 몰아간들 무슨 소용이랴
 未免感霜蓬(미면감상봉) 백발 된 감회 면치 못할 텐데
 
 작자는 광활하게 펼쳐진 부평 들판에 압도되어 있다. 산이 가로막지 않은 '넓디넓은 큰 들판(茫茫大野)'에 대해 '산 빛이 있는 듯 없는 듯(山色有無中)'하다고 표현했다. 그에 따라 '논밭 이랑이 종횡으로 펼쳐(禾田縱橫畝)'져 있었다.

 부평(富平)이란 지명이 '평평한 평야(平)'에서 유래했듯이, 작자가 목격한 부평 들판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을 훨씬 넘어섰다. 들판의 끄트머리 어디쯤에 서경(평양)이 위치한다며 '아득한 곳에 있을 서경부'라는 진술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넓은 들판에 기대 사는 마을들은 평화롭기만 하다. 마을마다 참새 지저귀고 목동 피리소리 들리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추수를 한 이후의 들판과 마을의 모습이다. 시각과 청각에 의해 포착한 부평 들판과 마을 정경은 내년은 물론 후년에도 계속될 것 같았다.

 이에 비해 자신은 나날이 백발만 늘어간다고 시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부평에 거듭 이르러 밤에 빗소리를 듣고 운을 사용하다(重到富平夜聞雨用韻)>
 此日長爲客(차일장위객) 오늘은 나그네 신세
 何時馬首東(하시마수동) 어느 때 말머리 동쪽으로 향하나
 一燈明枕上(일등명침상) 등불이 침상을 밝게 비추자
 百慮萃胸中(백려췌흉중) 온갖 생각 흉중에 모이네
 葉落池邊雨(엽락지변우) 연못가에 비 내리자 나뭇잎 지고
 鴻飛屋角風(홍비옥각풍) 지붕 모서리에 바람이 일자 기러기 나는데
 兩?已成蓬(양빈이성봉) 양쪽 귀밑털은 이미 백발 되었네
 
 성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부평을 다시 들렀다. 날이 저물고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하루를 묵어야 했다. 등불을 밝히자 빗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잡생각이 맴돌기에 창문을 열었더니 연못이 보였다. 가을을 밀어내고 겨울을 견인하려는 가을비가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곧 겨울을 알리는 기러기가 바람을 타고 오면, 귀밑털이 더욱 하얗게 샐 것을 작자는 예상하고 있었다.

 '온갖 생각 흉중에 모이네'에서 '온갖 생각'은 세월의 흐름과 대비되는 자신의 처지이다. '나뭇잎 지고' '기러기 나는' 일은 자연의 일상이며 반복인데, 이에 비해 작자는 자신이 표현한 대로 단순히 '나그네 신세'였던 셈이다.

 작자는 가을 성묫길에 부평을 경유하며, 그에 대한 소회를 한시로 남겼다. 한시에 등장하는 부평은 넓은 평야와 그것을 토대로 살아가는 많은 마을들, 그리고 평화롭고 풍성한 공간이었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