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PCB(Transformer oil) 448드럼, 수은폐기물 10파운드, 석면(asbestos) 2580파운드, 배터리산(Battery acid) 118캔, 솔벤트슬러지(Solvent sludge) 82드럼, 하이포솔루션(Hypo solution) 77드럼 등. 1991년 미공병단 건설기술연구소 용역보고서 '미8군과 주일미군의 위험폐기물최소화방안'에 기록된 1987부터 1989년까지 3년간 부평 DRMO에서 처리한 폐기물의 양이다.

DRMO는 'Defense Reutilization and Marketing Office'의 약칭으로 미군물자재활용유통사업소쯤으로 해석되는, 즉 주한미군의 기계와 차량 등을 재활용하고 각종 폐기물을 처리한 곳을 가르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부평과 부산, 김천 3곳에 DRMO가 있다. 그 중 부평과 부산의 DRMO는 반환예정에 있다.

PCBs(polychlorinated biphenyl)는 변압기, 배터리 등 공업용 열매체, 절연유 용도로 폭넓게 사용한, 독성이 강하고 자연환경에서 잘 분해되지 않는 화학물질이다. 먹이 사슬에 의해 축적되어 인체에 들어갔을 때 신경계 손상, 돌연변이 유발뿐 아니라 피부, 뇌, 췌장 등에 암을 일으켜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IARC)가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79년에, 전세계적으로는 2001년에 스톡홀름 협약에 의해 사용 및 제조가 금지되었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취급금지물질이다. PCBs는 고온으로 소각 '처리'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2차 오염물질 다이옥신이 발생한다.

그런 PCBs를 부평 DRMO에서 최소 448드럼을 처리한 것이다. PCBs외에도 미나마따병을 유발시키며 임산부에게 치명적인 수은, '조용한 살인자'로 불리는 1급 발암물질인 석면 등도 DRMO에서 '처리'되었다. 또한 1997년 미공군 에디윈 오쉬바 (Edwin H. Oshiba) 대위는 '대한민국에서의 위험폐기물지역정화문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부평 DRMO 토양의 석유계총탄화수소(TPH) 최고농도가 47.1g/kg(47100mg/kg)"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토양오염기준치의 94배로 토양의 4.7%가 기름 등 유류라는 뜻이다.

2012년 부평구와 2014년 환경부가 DRMO 주변지역을 조사한 결과 유류와 중금속 뿐 아니라 다이옥신과 PCBs도 검출되었다. 다이옥신의 경우 2,3,7,8-TCDD 독성등가환산 농도로 55.748 pg-TEQ/g까지 검출되었는데 이는 2009년 우리나라 전국평균 2.280의 24배, 최고농도 16pg-TEQ/g의 3.5배에 해당한다. 특히 표토뿐 아니라 심토에서도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는데 물에 잘 녹지 않는 다이옥신의 특성을 고려할 때 부평미군기지에서 유독물질 매립 등 인위적인 교란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조항에는 'KISE'라는 표현이 있다. 'Known, Imminent, Substantial Endangerment to human health'의 약칭인 KISE는 '인체에 급박하고 실질적이라고 알려진 위험'을 의미한다. 그동안 미군은 반환기지와 현기지의 환경오염정화와 관련하여 KISE규정을 들이대며 매번 오염정화의 책임을 회피했다. 오염원인자에게 정화의 책임이 있는 것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에서 보더라도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DRMO는 다이옥신, PCB, 석면, 수은 등 인체에 치명적인 물질들로 매우 심각하게 오염된 곳이다. 백번 양보해서 불공정협정이 현재의 SOFA KISE를 적용하더라도 DRMO 오염정화의 책임은 미군에게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정부는 KISE의 해당여부 판단보강을 위해 미국과의 합의하여 공동환경평가절차(JEAP)상의 위해성평가방식을 도입하였다. 앞으로 캠프마켓과 DRMO의 반환논의가 시작되면 공동환경평가절차가 진행될 것이다. 최근 정부는 반환예정인 5개 미군기지 중 부산 DRMO와 동두천 캠프캐슬에 대해 미군 측과 최종 합의했다. 그런데 부평 DRMO와 상황이 비슷한 부산 DRMO의 경우 공동환경평가절차가 진행되었음에도 오염원인자인 미군에 오염정화의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인천시는 DRMO의 조기반환을 위해 수차례 협상을 진행했고 그때마다 미군은 오염문제를 제기하지 말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올해 국방부는 부영공원의 토양오염을 정화한다. 또한 환경부는 문학산 유류오염에 대해서도 2단계 조사를 진행한다. 다소 미흡하고 많이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곳은 모두 과거 주한미군이 썼던 곳이고 오염원인자가 주한미군일 가능성이 제일 높은데 우리나라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조사하고 정화하고 있다. 주한미군기지 중에서 오염이 가장 심각할 것으로 추정되는 부평DRMO를 되돌려 받는 과정에서 우리는 과연 환경주권을 지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