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교수
모든 정치가가 너나 할 것 없이 표를 얻기 위해 취업을 들먹이며 달성하기 어려운 공약을 남발한다. 취업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적 흐름을 모를 리 없으련만 몇 십 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큰소리를 친다. 대학도 덩달아 춤을 추며 취업에 유리한 것들을 취하려 한다. 취업에 불리하면 학문의 필요성이고 뭐고 필요 없다는 태도이다. 학생들이 어느 곳에 취업을 해야 한다는 것도 없이 그저 취업률이 좋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취업의 질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대학들은 자기 대학의 취업률이 최고라 광고를 해대며 그것을 미끼로 학생들을 유치하려 한다.

대학을 개혁한다며 취업이 잘되는 학과는 학생정원을 늘리고 취업이 안 되는 학과는 정원을 줄이거나 아예 과를 없애기조차 한다. 이것이 대학의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항변을 한다. 위험한 생각이다. 학과가 쇠락하거나 없어지면 후학양성이 어려워져 정작 필요하게 될 때 그 분야의 전문가는 찾을 수 없게 된다. 대학은 전문가 중에서도 최고인 자를 뽑아 연구와 후학양성에 임하게 하는 곳이다. 전문가 양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한번 없어지면 다시 복원하기 힘들어진다. 세상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하여, 학문분야의 인기도 시시각각 달라지는데, 비인기학문이라 하여 학과마저 없애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줄고 있는 연구자는 영영 단절되고 만다.

모든 대학에 모든 학과가 있을 필요는 없지만, 모든 대학에서 모두 퇴출되는 학과가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모든 학문분야는 유지되고 연구 또한 중단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학문분야를 어떻게 묶어 한 단위로 할 것인지, 또한 학문분야에 따라 학생 수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할 것이다. 학생 수가 많고 교수들이 많아야 경쟁력이 생기는 것인데, 인기가 없다하여 학과정원을 줄이게 되면 학과의 경쟁력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대학의 학과를 권역별로 몇 개 대학으로 모으든지 하여 학문의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학문은 발전하며 새로운 것을 추구해가는 것이지만, 우리 대학들이 보여주는 개혁과 변화에는 구호만 요란할 뿐 실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학과의 명칭만을 손질하여 내놓기도 한다. 글로벌 사회라 하니 전공에 글로벌을 붙이거나 전공명칭을 영어로 바꾸거나 하여, 시대를 선도하는 첨단의 새로운 학과가 탄생한 것처럼 꾸민다. 하지만 무늬만 바꾼 학과에서 진정 새로운 독창성 있는 학문의 성취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기를 쫓다보니 새로운 학과들을 곧잘 만들지만 그런 학과가 기존 학과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또한 어떤 준비를 하여 만든 것인지 준비된 전문가는 있는지 좀처럼 알기가 어렵다. 새로운 학문분야를 출발시키기 위해서는 업적을 쌓아가며 시간을 가지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요술방망이로 치듯 뚝딱 만들어내서는 정체불명의 엉터리 전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학이 학생을 상대로 준비 없이 실험을 하는 곳일 수는 없다.

원래 한 가지를 열심히 하게 되면 지식의 폭이 넓어져 다른 것과의 융합이나 접목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학은 하나의 전공능력도 제대로 습득하기 전부터 복수전공이다 융합이다 하며 이것저것 다해야 한다는 논리를 강조하고 있어, 전문능력이 떨어지는 어중간한 인재의 배출을 부추기는 상황이다. 다양한 전공을 하는 것도 좋지만,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라도 제대로 된 능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하나의 전문능력도 올바로 습득하지 못하게 하는 교과과정의 운영은 학생들의 취업능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 한 우물을 파라는 옛말을 깊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학생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서는 전공분야도 중요하지만, 어떤 분야이든 경쟁력 있는 전문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대학개혁에는 대학에 임하는 학생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 또한 중요과제인데, 대학은 늘 교수나 환경에 대한 변화만을 요구할 뿐 학생의 변화에는 뒷전이고 무관심이다. 대학을 가장 자유로운 공간이라 말하는데 이는 학문과 관련된 자유로움이지, 무질서나 무절제를 용인하는 자유로움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연구와 교육에 적합한 공간이어야 할 대학이 음주가무나 이벤트, 무질서가 난무하는 놀이터 화하고 있어, 연구와 교육이 점점 위축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대학은 학생들을 일깨우고 지성인의 전당으로 바꾸는 교육을 개혁의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학생들은 등록금이 비싸다 아우성치지만 말고 대학에서 좀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학구적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취업으로 가는 최고의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학의 존재의의에 대한 진정한 통찰이 없는 대학개혁은 유행가의 인기만이 최고이고 클래식의 가치는 도태되어야할 구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