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산신령이 찾아와 일러주었다. 오는 9월9일 집안에 재앙이 있을 터이니 가족들 마다 산수유가 든 주머니를 만들어 목에 걸고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따라 집을 비우고 가족들과 뒷산으로 피해 국화주를 마시다 돌아왔을때 가축이 모두 죽어 있었다. 그것은 가족을 대신한 죽음이며 국화주가 아니었다면 모두 죽었을 것이다. 그 이후 음력으로 9월9일 중양절이면 국화주를 마시며 산수유 주머니를 거는 풍습이 시작되었다는 중국의 전설이다.

 국화는 우리도 장수하는 풀꽃으로 여겨 예로부터 애용했다. 술로는 물론 봄에 싹을 나물로 가을에 꽃은 약으로 썼다. 9월9일에는 찹쌀가루에 꽃잎을 입힌 국화전을 즐겼다. 국화는 오래 복용하면 혈기에 좋고 몸을 가볍게 하며 쉬 늙지 않는다고 한다. 감기 두통 현기증에도 효과가 있고 꽃잎을 말려 베갯속을 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단잠을 잘 수 있다고도 한다.

 국화는 가을의 대표꽃이다. 코스모스가 있기는 하나 많은 꽃들이 봄에 피어 가을에 열매를 맺는데 비해 국화는 가을 하늘아래 홀로 외로움을 씹는다. 그래서 국화를 오상고절이라 한다. 물론 정절로야 국화 말고도 송죽이 있으나 완상하기엔 거리가 있어 특히 국화가 숱한 시인 묵객의 벗이 되었다. 국화를 읊은 노래로는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를 비켜갈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옛 선인들의 국화를 읊은 아름다운 노래들이 많다.

 『국화야 너는 어히 삼월동풍 다지내고/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다/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는 이정보의 시조이고 정조때의 문인 신위는 이런 시를 남기고 있다. 『한겨울에도 발을 내리지 않고/책과 화분으로 바람막이 하네/오리 화로의 차끓이는 일을 말고라면/상머리엔 온통 국화향기라.』

 가을이 깊어가는 빈 정원에 정렬한 화분이거나 산자락의 온통 들국화-국화없는 가을을 상상해보라. 그처럼 삭막하기 이를데 없으리라. 지금 곳곳에서 국화전시가 열리고 대로변 화단엔 우리꽃 들국화가 수북이 피어 화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