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살 박힌 손에 연필 '꼭'배움의지 불태운 '공민학생'
굳은 살 박힌 손에 연필 '꼭'배움의지 불태운 '공민학생'
  • 김진국
  • 승인 2015.0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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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현의 사진 시간을 깨우다
28. 빛바랜 사진첩 속 공민학교
국민학교 미졸업자 대상 교육
생계 어려운 이들 늦깎이 입학
한때 전국 1만8000여개 달해
▲ 1950년대 중반 송현동에 있던 판자로 지은 공민학교의 학생들. 비록 모습은 남루하질 모르지만 그들의 눈에서불타는 향학열을 엿볼 수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됐다. 의무교육이 되면서 '초등학교는 누구나 당연히 가는 곳'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는 나이가 차면 그렇게 당연히 입학하는 데가 아니었다. 6.25 전쟁 후 '삼시세끼'라는 말이 일부 계층에서나 쓰던 시절, 학교 다닌다는 것은 먹고 사는 것 다음 순위이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가족 생계의 일원이 돼 제 끼니는 제가 해결해야 했던 이들에게 학교는 언감생심이었다. 어느 정도 살만해지고 여유가 생겨서 제때 하지 못한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학교 다니기에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았다.

공민학교(公民學校)는 초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학령을 초과한 사람에게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1946년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수업 연한은 보통 3년이었다. 이와 함께 국민학교 또는 공민학교를 졸업한 자를 입학 대상으로 하는 고등공민학교도 설립됐다. 수업연한은 1년에서 3년이었다. 1970년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규탄하며 분신했던 전태일 열사도 국민학교를 중퇴하고 고등공민학교를 다녔던 적이 있다.

공민학교는 국어, 사회, 산수, 자연, 체육, 음악, 미술, 실과, 반공, 도덕 수업을 받았으며 고등공민학교는 여기에 가정, 외국어 등이 추가됐다. 특이한 것은 두 과정 모두 반공교육이 있었다는 점이다. 졸업을 하더라도 학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때문에 공민학교를 졸업하면 중입검정고시를, 고등공민학교를 졸업하면 고입검정고시를 통과해야만 중학교와 고등학교 진학이 가능했다.

정부에서는 공민교육을 민도(民度) 향상과 국민 계몽을 통해 신흥국가의 국민으로 양성하는데 활용했다. 설립 목적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문맹퇴치였다. 1948년 인천부(현 인천시)는 공민학교 증설을 강화했다.

1946년 인천 관내에 7만6000여명의 문맹자가 있었는데 공민학교 등을 통해 2년 만에 90% 가량이 한글을 깨쳤다고 발표한다. 더불어 그해 5월10일 치러지는 정부 수립 총선거에서는 누구나 글씨를 읽고 투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다.

사진은 1950년대 중반 동구 송현동에 있던 공민학교 학생들의 모습이다. 판자 교실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은 그들의 눈에서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곳 외에 답동에 시은공민학교, 주안에 성인고등공민학교, 논현동에 성명고등공민학교 등이 있었다.

현재 인천의 사학 중에는 공민학교로 출발했거나 그것을 근간으로 하는 학교가 적지 않다. 동구에 있는 동명초교는 당시 식모를 비롯한 불우한 환경에 처한 8세에서 18세 까지의 소녀 120명을 따로 학교 내 공민학교에서 교육을 시켰다. 이곳을 졸업하면 동명초교로 나이에 맞는 학년으로 편입시켰다.

인천경찰서장으로 부임한 류충렬 씨는 1955년 도원동 산꼭대기에 부랑아들을 선도하기 위해 직업소년학교(인천소년수양원)을 건립했다.

약 500명의 거리의 소년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는데 집 없는 아이들에게는 합숙소까지 제공했다. 이 수양원은 1965년 광성고등공민학교를 거쳐 오늘의 인천광성중고로 성장한다.

동구 수도국산 기슭에서 출발한 숭덕여중고는 1960년대 초 교회가 공민학교를 운영하면서 학교 기틀을 닦았다.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대표적인 빈민촌이었던 그곳의 많은 학생들에게 소중한 배움터가 됐다.

경제가 발전하고 수입이 향상되면서 공민학교는 급속히 문을 닫는다. 1950년 인천시가 속한 경기도에 공민학교 2646개 고등공민학교 40개가 설립된 것을 비롯해 전국에 1만8500개의 공민학교와 340개의 고등공민학교가 있었다. 1970년대 말부터 급격히 줄어들어 현재 전국에는 공민학교 1개교, 고등공민학교 4개교만 남았다.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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