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창작센터와 예술가들 - 오십개의 방 오만가지 이야기]
6) 입주작가 심층 탐구2 - 이대일·박경소 작가
▲ 백기영(왼쪽) 경기문화재단 북부사무소장이 전통음악가 박경소(오른쪽) 작가와 사운드 아티스트 이대일 작가를 만나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재훈 작가
▲ 이대일 작가
▲ 박경소작가
▲ 김종선 대부도 해양생태관광마을 육성추진센터 공동대표
아시아 아트페스티벌 개막 공연 협업 … 배 구조물로 된 '실험악기' 연주
이 "세월호 아픔 위로 … 배밑에 가라앉는 소리, 진정한 레퀴엠이라 생각"
박 "연주는 물론 행위가 중요했던 작업 … 안산지역·사회 전체에 유의미"

경기창작센터 입주 작가들의 심층탐구 두번째다. 백기영 경기문화재단 북부사무소장이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는 이대일 작가와 박경소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 창작센터 입주작가들과 '오래된집 프로젝트'를 협업한 마을 주민 김종선씨로부터 '대부도 사랑 이야기'를 들어봤다.

▲백기영 : 먼저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두 분의 협업 작업을 본 것은 지난해 안산의 원곡동에서 열린 아시아 아트페스티벌의 개막 공연에서였던 것 같은데, 그 작품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이대일 : 저는 지난해 안산의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가 주관한 아시아 아트페스티벌의 총감독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아시다 시피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가 나면서 전 국민이 슬픔에 빠지게 됐고 그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은 곳에서 페스티벌 행사를 오픈해야 하는 것은 저에게 상당한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행사의 오픈에서 세월호 문제를 간과한 향락적인 축제가 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같이 했던 공연은 세월호의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제의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경기창작센터에 같이 입주하고 계시는 주재환 선생님께서 조언해 주시기도 하셨죠. 저희가 공연에서 사용한 배는 하얀 창호지를 발라서 죽은 자들이 사후의 강을 건너도록 돕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저도 배에 종이를 바르는 행위가 그런 상징을 가지고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 놀랐던 것은 원곡동에 모여 있었던 조선족 동포들이 그 배를 보자마자 의미를 알아보시는 거예요. 역시 전통적인 상징에서 서로 소통 가능한 지점들이 생긴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박경소 선생님께 특히 감사했던 것은 전통악기의 전문 연주가를 일종의 실험악기인 배로 만들어진 구조물로 연주하도록 요청한 것인데, 이 악기를 훌륭하게 연주해 주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자기 색깔에 맞게 잘 연주를 해주셔서 저는 아주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백기영 : 박경소 선생님께서는 어떠셨는지요. 좀 생소한 협업이었을 것 같기도 한데요.

▲박경소 : 저는 처음 이대일 선생님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너무 의미가 좋아서 기꺼이 참여하게 됐습니다.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안산이라는 지역과 한국사회 전체에게도 유의미했던 작업이었습니다. 저한테 도전이었던 것은 음악의 카테고리 안에서만 연주했었는데, 이 작업은 '행위(Acting)'가 더 중요한 거잖아요. 저도 이런 건 처음 해봐서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물론 제가 악기를 발명해서 연주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닌데, 전자바이올린을 한다든가 새로 개발한 현악기를 연주해 본적은 있었어요. 그런데 이 경우는 연주도 연주지만, 연기력도 요청되는 작업이라서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하고나서 보니까 의미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연주가 아닌 퍼포먼스를 해본 거 같아요.

▲백기영 : 실제 악기를 연주하실 때, 소리가 나올 텐데 어떻게 연주해야 하겠다든지 악기와 호흡하는 부분은 어떠셨어요?
▲박경소 : 배를 연주할 때는 사실 무엇을 소리를 내든, 공개된 장소에서 연주를 할 때 기본적으로 악기와 저만의 기본적인 소통이 있고 두 번째로는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이 있어요. 연주는 악기의 상태, 관객의 상태, 저 자신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죠. 제가 배를 연주할 때도 그것이 변하지는 않았어요. 악기 상태가 처음 만져보는 상태였고 그 당시 주변의 사운드 상태가 또 생소했고 공간 자체의 힘이 있었고요. 보시는 분들의 호기심어린 시선과 에너지가 저한테 다 오니까 그것에 맞는 적당한 길이 그리고 어떤 행위에 맞는 작곡이 이뤄졌던 거 같아요.

▲백기영 : 지금 이대일 선생님 배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경기창작센터가 바닷가에 있다 보니까 최근에 카약도 만드시고 배 만드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시기도 하셨어요. 어떤 예술적 호기심에서 배 만드는 작업을 해오신 건가요?

▲이대일 :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아까 창호지 배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하자면, 이 배를 팽목항에서 연주하자고 제안도 했었어요. 이 배 소리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소리가 배 밑으로 내려갑니다. 가라앉는 소리가 나고 저는 이 소리가 진정한 '레퀴엠'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 팽목항에 가지는 못했지만, 안산 원곡동에서나마 실현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이 배를 바다에 띄우고 연주를 해봤어요. 배를 연주하면 이 소리가 물속으로 번져가서 물속에 있는 것들에게 소리를 전달한다는 느낌이 좋았던 거 같아요. 바닷가에서 이렇게 배를 타고 작업할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은 정말로 즐겁습니다. 최적의 조건입니다. 서해안에 파도가 적고 내항이라서 아주 잔잔한 바다환경이라 안전합니다. 저는 배를 만들기 전에는 이 지역에 지나가는 태풍에 관심을 갖고 봤어요. 바닷가라 바람이 센데 산에 올라가서 바람이 불면 소나무들을 묶어 놓은 줄에서 소리가 나는 실험 작업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백기영 : 지금 소리이야기를 하시는데, 바다에 나가서 배 위에 있을 때는 물결의 진동과 연동되고 이 물결의 파동에 또 소리를 만들어 띄워 보낸다는 것은 또 하나의 진동을 물결 속으로 생산해 내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런 감각적인 행위들이 단순히 소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촉각적인 감각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이대일 선생님은 이 작업 이전에도 시각과 청각이 교차되는 감각에 대해서 사운드 작업을 해 오셨고 공감각적인 작업을 해 오셨는데, 이런 감각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이대일 : 그 전에는 전자음악이나 스튜디오에서 만들어 내는 사운드에 관심이 많았는데, 경기창작센터에 와서는 그런 소리를 만들 필요가 없었어요. 이곳에 있는 자연의 소리들을 채집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바닷가에 나가보면 물이 빠질 때 갯벌의 생물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정말로 신비롭습니다. 또 새들이나 곤충들이 내는 소리들은 그동안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소리들을 만나게 해 줬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경기창작센터는 그동안 제 감각을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재구성하게 된 곳이기도 합니다.

/백기영 경기문화재단 북부사무소장


<인터뷰 / 김종선 대부도 해양생태관광마을 육성추진센터 공동대표>
"대부도 경관 자체가 박물관" 
창작센터 예술가에 지역 이야기·역사 소개
'해양생태 주민생활사 전시관' 개관 큰 역할

'푸~우!' 푸른 서해바다 수면 위로 쑥 올라와 숨쉬는 소리를 냈다. 수줍게 물살을 가르며 조용히 헤엄치다가 이내 사라졌다. '상괭이'였다.

김종선(56) 대부도 해양생태관광마을 육성추진센터 공동대표.
그가 고등학교 때 진두(현 신당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뭍(인천)으로 유학가는 뱃길에서 마주친 상괭이는 지금도 구봉도 쪽에서 관찰된다. 그때는 그것이 돌고래인줄로만 알았다. 상괭이는 쇠돌고래과(크기가 작은 돌고래)에 속하는 해양포유류로, 서해바다가 최대 서식지인 멸종위기 보호종이다. 그가 그 두개를 구별한 것은 생태환경에 눈을 뜬 한참 뒤에 였다.

"대부도 경관 자체가 박물관"이라고 말한 그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뭍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15년만에 고향에 돌아 온 그는 지역사업에 관여하면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 현란한 네온사인의 불빛을 받아들이느냐, 생채기 난 자연이나마 지켜내느냐는 고민이었다.

마을 앞바다에는 어족이 풍부했다. 바지락과 굴은 계통출하했고, 갯벌에 지천이던 낙지는 젓갈로 담아 오래두고 먹었다. 포도가 유명한 것은 최근이다. 시화방조제로 어획고가 줄어들자 높은 품질로 평가받던 대부도 포도를 더욱 많이 심었던 것이다.

특히 섬이 뭍으로 연결되자 자연환경은 급속히 파괴됐다. 갯벌은 줄었다. 마을의 상징인 황금산은 파헤쳐졌다. 펜션 등 국적불명의 건축물은 우후죽순 들어섰다.

이에 그는 고향의 산과 바다, 들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한 방안으로 해양생태관광마을 육성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발을 해야 삶의 질이 좋아지지, 보전만 해서 되겠느냐"는 주민 반발에 부딪쳤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 주민들은 대부도가 품고 있는 바다와 갯벌, 섬의 문화, 마을 공동체의 소중함과 가치를 공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는 대부도에 자리잡은 경기창작센터의 예술가들에게 지역 이야기와 역사를 들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자발적인 예술 생산자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 결과물이 구봉도 바닷가에 문을 연 '대부도 해양생태 주민생활사 전시관'이다. 주민들이 서로 비슷한 고향의 추억과 기억을 공유하는 장소다. 김 대표를 비롯한 마을 주민과 경기창작센터 조전환·최경자 작가가 힘을 모아 전시콘텐츠는 물론 공간디자인까지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주민들도 평소 무심코 지나친 것들, 줴(죄, 굴 채취 도구)와 낙지쌀미(낙지 꿰는 바늘), 폭종가래(낙지잡는 도구), 염부삽(염전 전용 삽), 끄랭이(백합 잡는 어구) 등의 어구를 비롯해 이제는 사용하지 않은 옛 농기구에 다시 눈길을 준다. 거기서 자신들의 소중한 삶과 추억이 묻어나는 것을 발견하고 마을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는다고 한다. 그는 "개발이 조금 더뎌도 마을 경관 그 자체가 관광 자원으로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