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26>하연(河演)의 '인천향교가요'
▲ 경재집(敬齋集)
하연(河演, 1376~1454)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문하생으로 태조 5년(1396) 때 급제한 후 세종 27년(1445) 우의정에 올랐다. 이때 영의정은 황희(黃喜), 좌의정은 신개(申槩)였다. 1453년 자신이 미리 보아둔 소래산의 묏자리에 장사를 지냈다. 그가 남긴 문집으로 경재집(��敬齋集��)과 진양련고(��晉陽聯藁��)가 있다.

 향교(鄕校)는 공자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중국의 성현군자를 모시는 제사의 기능과 지방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의 기능을 했다. 인천 관교동에 있는 향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최항(崔恒, 1409∼1474)의 중수기(重修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세조 이전에 설치된 것으로 추측된다.
 하연은 <인천향교가요(仁川鄕校歌謠)> 3수를 지었다.
 
 主鎭東南是慶源(주진동남시경원) 동남의 주요 진영은 경원으로
 襟山帶河別乾坤(금산대하별건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별세계이네
 農桑沃野千年地(농상옥야천년지) 농사와 뽕나무 일 기름진 들판은 천년의 땅으로
 更値旬宣雨露恩(갱치순선우로은) 다시 임금님의 은혜 두루 미치게 되었네
 
 작자는 문학산 일대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삼국의 다툼 공간이었던 문학산 주변은 고려 때 인주이씨(仁州 李氏)와 함께 왕가(王家)의 고향이었다. 고려 문종조~인종조에 이르는 7대 80여년 동안 왕실의 왕자와 궁주들은 인주이씨 외손 또는 생질이었다. 이른바 '칠대어향(七代御鄕)'이란 게 그것이다.
 그러한 인연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의 외가(外家)이고,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윤씨의 외가였다. 그래서 세조 5년(1459) 11월 5일 인천군(郡)이 인천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
 
 春氣氤氳載好生(춘기인온재호생) 봄기운 화창하여 만물 살리기에 좋고
 秋霜肅烈以西成(추상숙렬이서성) 가을 서리 사나워지면 가을걷이 하네
 仁威幷濟規模大(인위병제규모대) 인덕과 위엄을 함께 이루어 규모가 커져
 領相高門又有卿(영상고문우유경) 좋은 가문에서 영상 벼슬도 했네
 
 봄의 파종과 가을의 수확이 조화롭기만하다. 작자의 가문이 펼친 인덕과 위엄으로 결국에는 영상 벼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바탕에는 '인천'이라는 공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 공간이었기에 그곳에 위치한 '향교'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潔己互鄕施不屑(결기호향시불설) 자신을 깨끗이 한 것과 호향을 달갑게 여기지 않은 것은
 日星明白聖賢說(일성명백성현설) 해와 별이 밝듯 성현의 말씀이네
 金章玉節映周行(금장옥절영주행) 금장옥절이 큰 길에 비추면
 競向甘棠歌激切(경향감당가격절) 다투어 감당의 노래 격절하게 부르리
 
 불선(不善)을 선(善)으로 바꾸려 했던 호향(互鄕)의 일화에 기대 향교에서 선정(善政)을 행하는 자들이 배출되기를 바라고 있다. 호향(互鄕)은 풍습이 비루한 마을로 그곳의 사람들이 不善하다 하여 모두들 만나기를 꺼려하였다. 하지만 공자는 그러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不善에서 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 고을 출신의 아이를 만났던 게 호향의 일화이다(��논어(論語)�� 술이편). 자신을 깨끗이 하여 선(善)으로 옮기는 게 중요한 것이지 과거의 불선(不善)이라는 예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금장옥절(金章玉節)은 관직에 나간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감당의 노래(甘棠歌)는 주(周)나라 소공(召公)이 여러 고을을 순행하다가 감당나무 아래에서 공평하게 정사를 펼쳤는데, 백성들이 그 나무를 보호하면서 감당(甘棠)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고사와 관련돼 있다. 이후 선정(善政)을 행하는 지방관을 표현하는 수식어가 되었다.

 작자는 문학산 일대의 역사와 개인 가문의 융성에 대해 말하면서, 앞으로 인천향교에서 배출된 자들이 '감당가'의 고사처럼 선정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바람과 관련된 듯, 그가 죽은 후 250여 년 만에 향교의 맞은편 서쪽에 학산서원(숙종 28년, 1702)이 들어섰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