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교수
대학생들이 성적평가방법을 바꿨다하여 시위를 한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하는데 제도를 변경하면 나쁜 성적을 받을 수 있으니,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요구이다.
성적만 발표되면 학생들은 아우성이다. 학점을 올려줄 수 없느냐는 메일과 전화가 쇄도한다. 별별 사정이 다 등장한다. 성적을 올려주지 않으면 죽을 듯한 애원이다. 낙제인 F학점을 면해만 달라는가 하면, 최하위 성적인 D학점을 F학점으로 바꿔달라는 사정도 한다. F학점을 받으면 최종성적표에는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나쁜 성적을 받더라도 재수강제도를 통하면 좋은 성적으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 이런 성적표가 학생들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은 수강신청 전쟁이 벌어지고, 설령 필요하더라도 성적받기 힘든 과목은 기피대상이 되고 만다. 좋은 수업, 선택해야할 수업이 성적 잘 주고 학생들 편의 잘 봐주는 과목이 되어버린 것이다. 성적을 엄격히 부여해야 한다는 따위는 사치스러운 생각이다. 전혀 유익하지 않은 인기인이 활개를 치듯이 수업도 필요성 보다는 그저 학생들의 입맛에 맞는 것이어야만 인기 있는 과목이 된다. 합격 불합격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그저 앉아만 있어도 성적을 받는 수업, 컴퓨터를 틀어놓고 보고만 있어도 되는 수업들이 학생들 사이에 인기이다. 수강신청 전쟁이라는 웃지 못 할 뉴스도 수강에 부담이 적고 수강생이 많으면 성적취득에 유리할 것이라는 세태의 반영일 것이다.

성적이 장학생선발이나 취업 등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다 보니 모두가 불필요한 스펙 쌓기에 지나친 공을 들이듯, 진정한 실력 쌓기보다는 성적의 숫자 올리기에 안간힘이다.
결국 많은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취득하게 되고, 그런 성적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하니, 성적평가제도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인플레 되어 있는 성적을 두고만 볼 수도 없고, 결국 교수의 재량이었던 성적평가방식에 칼을 대고 만 것이다. 수강생들의 성적을 일정비율씩 상대적으로 평가하라는 것이다. 상대평가가 되면 학생 수가 적은 수업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기가 어려우니, 제한적으로 교수재량의 절대평가가 허용되어 왔는데, 그것도 안 된다는 것이다.
취업에는 능력이 중요하다. 능력을 나타내는 대학의 성적은 엄중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성적이 신뢰를 잃는다면, 이는 대학의 부적절한 제도운영과, 사회의 인재채용 방식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취업에 요구되는 성적이 그저 높은 숫자만 보는 형식에 지우치고, 대학이 취업에 목말라하는 학생들의 요구에 타협한 것이다. 취업이 전쟁인 상황에서 기업들의 인재등용 방식은 자칫 대학사회를 크게 왜곡시킬 수도 있다.

성적이란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총점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의 성적이어야 할 것이다. 입사시험에 성적을 반영하려거든 전공분야나 졸업시의 능력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비전공 과목을 소홀히 했다하여 전공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대학 4년간의 평균성적이 실력을 판가름하는 것도 아니다. 1학년 때의 F가 4학년 때 A라면 1학년 때의 A가 4학년 때 B인 학생보다 능력이 뛰어날 수 있음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성적이란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는 것이니, 고학년 때의 성적이 진정한 능력이라 평가받게 된다면, 저학년 때의 나쁜 성적을 굳이 세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성적은 취득한 그대로 남아있어 그 자취를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평가 또한 4년간의 성장과정 속에서 보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진리를 추구해야할 대학이 정도를 포기하고 왜곡된 현실에 타협하려 한다면 대학의 가치는 크게 훼손될 것이다. 학생들의 건전한 요구는 학교제도에 반영되어야 하지만, 성적이나 수강신청에 관한 제도들이 학생들의 선택을 보장한다는 수요자중심교육의 논리에 부합한 것인지 의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