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입안이 까칠까칠하고 콧구멍에서 단내가 났으나 인구는 또 이밥 한 그릇을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사관장과 함께 양정사업소로 달려갔다.

 양정사업소는 오전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왱왱거렸고, 넓은 앞마당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양곡이 도정되어 나오는 기계실 앞에는 소달구지와 화물차들이 길다랗게 줄을 서 있었다. 불과 몇 시간만에 너무 변해버린 양정사업소의 모습에 사관장은 혀를 내둘러댔다.

 『허! 이거 골치 아프게 생겼다 야.』

 『어카면 좋갔습네까?』

 인구도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저 옆 쪽문으로 차를 붙여 보라.』

 사관장이 양정사업소 앞마당 좌측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자고 했다. 인구는 사관장이 시키는 대로 경적을 울리면서 소달구지를 밀치고 들어가 수급과 알곡창고 옆에다 차를 세웠다.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 알아보고 오갔어. 여기서 기다리라.』

 사관장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그는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밀치고 양정사업소 안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전등불 아래서 도정작업을 하고 있던 정미공들이 탕탕 알곡 내림통을 치면서 껍질이 벗겨져 나오는 입쌀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전연에 보낼 팔분미는 어느 기계에서 정미하고 있습네까?』

 사관장이 뽀얗게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정미공의 등을 치며 물었다. 정미공이 귀를 갖다대고 잠시 듣다가 8호기로 가보라고 했다. 사관장은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며 8호기 쪽으로 다가갔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늙은 정미공이 마대 자루에 입쌀을 담아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사관장이 물었다.

 『이거, 전연에 보낼 팔분밉네까?』

 저울에서 입쌀 마대를 들어 내리며 정미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보니까 저울질이 끝난 입쌀 30여 마대가 쌓여 있었다. 불현듯 다그치면 밤늦게라도 입쌀을 수령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관장은 잰걸음으로 사무실로 올라가는 층계를 타고 수급과로 올라갔다.

 수급과 책임지도원 책상 앞에는 각 기관에서 나온 사민들이 출고지도서를 발급 받기 위해 길다랗게 줄을 서 있었다. 사관장은 오전에 뇌물을 고인 지도원 앞으로 다가가 아는 체를 했다. 지도원이 빼랍(설합)에 든 결재철을 들여다보다 8분미 3톤을 출고하라는 지도서를 즉석에서 발급해 주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인근 수매사업소 책임지도원이 줄도 서지 않고 새치기를 한다고 시부렁거렸다. 그러자 그 옆에 줄을 서 있던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불만을 터뜨렸다. 사관장은 그냥 듣고 넘길 수가 없었다. 선동하듯 계속 시부렁거리는 수매사업소 책임일꾼 앞으로 다가가 족제비눈으로 쏘아보며 한 마디 건넸다.

 『동무, 와 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