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현의 사진, 시간을 깨우다 - (19)산업화 시대의 국정 슬로건
▲ 1966년 초 인천시청에서 열린 5대 도시(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시장 회의 후 기념 사진. 앞 줄 가운데 짙은 안경을 쓴 이가 윤갑로 인천시장이다. 청사(현 중구청) 본관에 그해 국정 슬로건 '더 일하는 해' 현판이 걸려 있다. 전년도 1965년에는 '일하는 해'가 걸려 있었다.
관선 시절 국정지표 전국적 구호로 통용

1965년엔 '일하는 해'…민선6기 철학과 상통



새해를 맞아 각 지자체와 기업에서는 2015년의 슬로건을 새롭게 내걸고 있다. 슬로건은 구성원의 결집과 집단의 목표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효과가 있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각 지자체마다 그 지역 특성에 맞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지만 관선(官選) 시대에는 중앙에서 정한 국정지표가 전국적인 구호가 되었다.

산업화 시기 정부가 내걸었던 슬로건은 그 시절의 애환과 시대상을 잘 나타냈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는 게 최우선 과제였던 그 당시에는 '재건'과 '부흥'이란 개념이 근간이 되었다. 지금처럼 세련된 언어를 선택해 추상적 의미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명료하고 직설적이었다. 심지어 명령적이며 선동적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년 전, 1965년 병오년(丙午年)을 맞아 박정희 대통령은 신년 메시지를 통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을 모든 국민에게 호소했다. "새해에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변함이 없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안정과 성장을 도모하면서 특히 증산을 하고 수출을 증가시키고 국토를 개발하여 번영을 향한 줄기찬 노력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일하는 해'로 정한 정부의 결의는 이러한 우리들의 목표를 한마디로 집약해 놓은 것입니다."

국정 구호 '일하는 해'는 전국 행정기관은 물론 기업체와 공장 현장으로 전파되었다. 동사무소, 공장 굴뚝은 물론 학교에도 내걸렸다. 그해 인천지역은 부평지구수출공단 지정, 시민의 날 제정, 시내 자동전화 개통, 경인선복선(동인천역-영등포역) 개통, 인천시공보관 준공, 오림포스호텔 준공 등의 '일'을 했다.

이듬해를 맞아 대통령은 연두교서를 통해 1966년을 '다시 일하는 해'로 정하고 근면과 검소와 저축을 행동강령으로 삼아 증산, 수출, 건설에 총 매진할 것을 국정 지표로 내놓았다. 최종적으로 '다시' 대신 '더'를 붙여 1966년 슬로건은 '더 일하는 해'로 확정되었다. 그 뜻이 너무 강압적이라는 여론이 일었고 무엇보다 물가가 치솟자 사람들이 '더 올리는 해'라고 비아냥거리자 그해 8월 경 청와대와 정부 측 실무진이 모여 '근면의 해'로 변경하는 것을 논의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해는 그냥 '더 일하는 해'로 끝까지 갔다.

사진은 1966년 초 인천시에서 열린 5대 도시(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시장회의 후 시 청사(현 중구청) 앞에서 찍은 모습이다. 청사에 그해 국정 구호 '더 일하는 해' 현판이 크게 걸려 있다. 문맹자가 많았기 때문이지 글자 옆에 황소를 앞세워 쟁기질하는 농부의 모습도 함께 그려 넣었다.

1966년 인천은 슬로건에 걸맞게 많은 일을 했다. 제 47회 동계빙상체전 인천개최, 인천수출산업공업단지 기공, 인천제철주식회사 공장기공, 인천시립교향악단 발족, 인천항 제 2도크 축조공사 기공, 자유공원 석정루 준공, 경인간 직행버스 개통, 인화여자종합고·광성중·숭덕중 설립 등 인천 발전의 토대가 된 굵직한 일들을 많이 진행했다. '더 일하는 해'의 과중한 업무 탓이었는가, 윤갑로 시장 후임으로 그해 7월12일 부임한 신충선 시장은 과로로 쓰러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9월5일 숨을 거두었다. 향년 46세였다.

2014년 새로 출발한 민선 6기의 슬로건은 '인천의 꿈 대한민국의 미래'이며 시정목표는 '새로운 인천 행복한 시민'이다. 특히 '재정 건전화의 원년'을 목표로 삼은 올해 시정철학이 담긴 사자성어는 '극란신흥(剋亂新興)'이다. '어려운 인천시정을 잘 이겨내서 새롭게 일으킨다'라는 뜻이다. 50년 전처럼 '다시 더 일하자'라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