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현의 사진, 시간을 깨우다 - (17) 한국에서 처음으로 '메시아' 전 곡 연주한 내리교회
아펜젤러 1885년 찬송가 초연 국악 익숙한 조선인 문화충격
내리교회 중심 음악회 활성화 최영섭·윤학원 등 '거목' 배출
▲ 1954년 성탄절을 맞아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전 곡을 한국에서 최초로 연주한 후 기념 촬영을 한 내리교회 찬양대 모습. 직접 그림을 그려 만든 소박한 무대가 눈에 띈다. (1980년 발행 '내리교회 95년사'에서)
성탄절을 맞아 교회마다 크고 작은 성탄축하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가장 많이 선택되는 곡은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이다. 곡은 연주 시간이 거의 3시간에 이르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대작(大作)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 '할렐루야' 등 일부 곡만 발췌해 연주한다.

이런 '메시아'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 곡을 연주한 교회는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인천 중구 내동의 내리교회이다.

메시아 첫 연주는 아직도 6·25 전쟁의 포연이 가시지 않은 1954년 성탄절에 이뤄졌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내리교회 찬양대원이었던 이선환 씨는 원어로 된 전 곡의 악보를 한 질 3권(총 120여권)으로 번역해 만들었다. 40여명으로 구성된 내리교회 찬양대는 드디어 1954년 12월23일 내리예배당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국내 최초로 전 곡을 연주한다. 그 어느 합창단과 찬양대에서도 꿈꾸지 못했던 대곡(大曲)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사진은 그날 '메시아' 연주회를 마치고 교역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한 찬양대원들의 모습이다. 앞 줄 대원의 무릎에 놓인 악보가 꽤 두툼해 보인다. 한국에서 '메시아'를 초연한 내리교회를 중심으로 인천지역 교회는 1970년대 접어들면서 인천시메시아연합연주회를 기획한다.

'70년대편 인천시사'에 의하면 1978년 11월4일 인천시민회관에서 메시아연합연주회 창립기금 마련을 위한 내리교회성가대와 부평감리교회성가대 그리고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연합연주회가 개최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인천시메시아연합연주회가 창설되었고 이듬해 12월22일 제 1회 연합연주회가 열렸다. 내리감리교회, 중앙감리교회, 제3장로교회, 송현성결교회로 구성된 초교파 연합성가대와 인천시향이 연주하는 '메시아'가 인천시민회관 무대에 울려 퍼졌다.

내리교회는 우리나라 서양음악 역사의 작은 씨를 뿌린 곳이다. 한국의 서양 음악은 찬송가로 부터 시작됐다. 1885년 4월5일 복음을 들고 제물포에 첫발을 내디딘 아펜젤러는 그해 7월7일 일본에서 주문한 풍금이 도착하자 현재의 내리교회 인근 초가에서 '만복의 근원 하나님'이란 찬송가를 봉헌했다.

풍금 소리가 울려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듯 그 집에 몰려들었고 아름다운 소리에 금세 반해 버렸다. 선교사들이 가르치는 찬송가는 당시 장구와 꽹과리 그리고 피리가 중심이 된 국악 음률에 익숙해 있던 조선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종교 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일제강점기에도 내리교회는 인천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음악회의 좋은 무대가 되었다.

1920년 7월4일(주일) 인천남자엡윗청년음악부는 오전 11시부터 내리예배당에서 인천찬양회를 개최했다. 인천과 경성에 있는 서양인, 중국인, 일본인 교회의 음악가를 초청해 각자 언어로 독창과 합창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922년 4월29일(토) 인천남자의법청년회 음악부 주최로 오후 7시30분부터 내리예배당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시내 각 교회를 비롯해 일본인교회와 중국인교회 찬양대 그리고 경성의 성악가와 기악가를 초청해 성대하게 음악회를 개최했다. 혼잡을 피하기 위해 20전 짜리 입장권을 판매했는데 제모(制帽)를 쓴 학생에 한해 반액으로 할인했다는 내용이 당시 한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후 내리교회는 음악계의 거목들을 배출하는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은 내리교회 찬양대를 이끌며 '메시아'를 여러 번 지휘했고 한국합창계의 대부로 우뚝 서며 얼마 전 까지 인천시립합창단의 지휘봉을 쥐었던 윤학원도 내리교회 무대에서 활동했다.

'비목'의 작곡가 장일남은 광복 직후 월남해 송현동에 본적지를 두고 내리교회 찬양대를 지휘하며 서양음악의 자양분을 마음껏 섭취했다.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