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15>이규상의 인천죽지사 ②
인천은 어로활동 이외에도 소금과 관련된 공간이었다. 바닷물을 끓여 소금 생산하는 곳이 바닷가에 모여 있었다. 이른바 소금부엌[鹽廚]이 그것이다.
 
 蜂窠燕壘闢鹽廚(봉과연루벽염주) 벌집과 제비집인양 소금부엌 늘어있고
 鹽釜鹽成白雪鋪(염부염성백설포) 소금솥의 소금은 흰 눈처럼 퍼져있네
 寄水生涯君莫笑(기수생애군막소) 물가에 기댄 인생 그대는 비웃지 마소
 五行民食一般需(오행민식일반수) 모든 백성들이 일반 구해 먹는 것이라네(<인주요> 8연)
 
위에 표현된 대로 소금부엌은 '벌집과 제비집(蜂窠燕壘)'을 방불케 했다. 천일염이 유입되기 전에, 소금은 바닷물을 끓여 결정체를 만드는 '자염(煮鹽)' 방식에 의해 생산되었다. 바닷물을 솥에 넣고 쉴 새 없이 저어가면서 증발시켜야 비로소 '흰 눈' 같은 소금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소금 생산은 거친 노동을 필요로 했다. 소금 만드는 사람[鹽夫, 염부]을 하찮게 취급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규상의 눈에 포착된 염부는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염부에 대해 작자는 '물에 기댄 인생(寄水生涯)'이지만 '모든 백성들이 일반 구해 먹는(五行民食一般需)' 거라며 그들에 대해 '비웃지 말(君莫笑)'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들의 고단한 노동과정을 직접 보니 차마 비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에 대하여 동정과 연민, 고마움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은 갯가에서 여성들이 펼치는 어로활동을 보여주는 한시이다.
 
 童蛤淺埋大蛤深(동합천매대합심) 어린 대합 얕게 묻혀 있고 큰 대합은 깊게 있되
 絡締巢穴杳難尋(락체소혈묘난심) 낙지 있는 구멍 묘연해 찾기 어려워라
 浦娘競把尖鉤鐵(포낭경파첨구철) 포구의 아낙들 다투어 쇠갈퀴 잡고
 細掘融泥似捻針(세굴융니사념침) 촘촘히 진흙탕을 파니 바늘로 찍은 것 같네(<인주요> 5연)
 
5연은 갯가에서 대합을 캐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쇠갈퀴로 갯벌을 긁어가며 조개를 채취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갯벌 위에 바늘로 찍어 놓은 듯한 자국만 남았다거나, 낙지라는 녀석은 잡기 쉽지 않아 '묘연해 찾기 어렵다'는 데에서 작자가 현장에서 직접 경험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節近瑞端彭蟹生(절근서단팽해생) 단양절이 가까워지자 게가 나타나고
 繩囊俄頃拾來盈(승낭아경습래영) 잠깐 만에 주워와 다래끼 채울 수 있네
 老婆戴入都門內(노파대입도문내) 노파가 머리에 이고 마을 안으로 들어오자
 穿盡坊坊唱買聲(천진방방창매성) 마을마다 물건 파는 소리 울리네(<속인주요> 1연)
 
채취물과 운반도구, 매매과정이 등장하고 있다. 갯가에서 채취한 것은 '팽게[彭蟹]'이고 그것을 담아서 운반한 것은 다래끼[繩囊]이다. 다래끼는 한시에서 표현된 대로 줄을 엮어서 만든 주머니이다. 다래끼는 칡껍질을 가늘게 엮어 그물의 모양으로 만드는데, 바닷가 지방민들의 삶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는 도구이다.

그 안을 가득 채웠으니 그들의 기쁨도 대단했을 것이다. 물론 물건 파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채취물이 다래끼에 가득했으니만큼 그것에 흥정을 부치는 어조(語調)는 익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단양절 즈음에 나타나는 게는 우리가 흔히 아는 꽃게[串蟹]는 아닌 듯하다. '잠깐 주워도 다래끼가 찰' 정도라면 꽃게이기보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서식하는 '방게'일 가능성이 크다. '방게'를 한자의 음과 훈을 이용해 '팽게[彭蟹]'로 표기했을 것이다. 꽃게는 조류에 따라 이동하기에 어살에 갇히기도 하지만 갯가에서 잠깐 주웠다(俄頃拾)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그것을 운반하고 판매한 자가 노파였다는 점도 꽃게의 어로작업과 거리가 있다.

이규상의 죽지사를 통해 1765년 인천의 바닷가 모습을 재구할 수 있었다. 남성과 여성의 어로활동과 염부들의 고단한 삶은 노동의 방식과 도구에서 약간 차이가 날 뿐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인천을 이해하는 중요어[키워드]로 소금, 대합, 게 등은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 누대에 걸쳐 축적돼 왔던 것이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