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현의 사진, 시간을 깨우다 - 11. 빛바랜 추억 속의 자유공원 비둘기집
▲ 지금은 도시의 골칫거리가 되었지만 1990년대 까지만해도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은 1996년 철거되기 전의 자유공원 비둘기집.
1930년대 섬간 연락통 역할

1967년 자유공원에 11층집

30쌍 6년 만에 30배로 늘어

지금은 도심 애물단지 전락



올해 '서울 창의상' 최우수상은 가느다란 피아노 줄을 이용한 비둘기 퇴치법이 수상했다.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는 이제 도시의 골칫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정부는 2009년 배설물로 인한 건물 부식과 차량 피해 그리고 위생상의 문제를 야기하며 혐오감을 주는 비둘기를 유해(有害) 동물로 지정했다. 광장과 공원의 평화롭고 한가한 풍경을 완성하는 소재였던 비둘기는 오늘날 환영받지 못하는 조류로 전락했다.

인천 자유공원 광장에는 커다란 비둘기집이 있었다. 공원을 찾은 사람들은 맥아더 동상과 더불어 비둘기집 앞에서도 '인증샷'을 꼭 찍었다. 사진은 1982년 자유공원으로 그림 그리러 나온 인근 유치원 원아들이 비둘기집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11층으로 된 이 비둘기집은 1967년 대성목재공업에서 제작해 기증한 것이다. 190쌍 정원의 규모로 만들어 30쌍을 처음 입주시켰다. 해마다 식구가 늘어나 6년 만에 30배인 1000쌍이 되면서 극심한 주택난과 식량난을 겪었다. 결국 일부를 수원시와 여주군에 분가시키기도 했다.

설치된 지 30년 만인 1996년 초 공원 환경개선 계획에 의해 이 비둘기집은 철거되었다. 졸지에 '홈리스'가 된 비둘기들은 대부분 공원 아래 인천경찰청(현 하버파크호텔)으로 집단 이주했다. 바로 앞에 인천항 양곡 양륙장이 있어 밥벌이가 수월했기 때문이다. 비둘기들은 하역 작업 중에 떨어진 옥수수 알갱이를 주워 먹거나 아예 인근 제분 공장으로 날아가 쌓여 있는 곡식을 축내기도 했다. 공원 비둘기의 새 거처가 된 경찰청 건물은 배설물로 골치를 앓았다. 급기야 경찰청 측은 본관 건물 옥상에 비둘기집 두 동을 설치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인천은 오래전부터 비둘기와 인연이 깊다. 일제강점기 때 소월미도에는 인천관측소와 일본군 군용기지, 여의도비행장을 오가는 전서구(傳書鳩: 통신용 비둘기) 사육장이 있었다. 전서구는 다리에 각종 정보를 동여매고 인천-경성, 인천-팔미도를 매일 오전, 오후 한두 차례 적게는 5, 6마리 많게는 40~50마리가 뭉쳐서 저공으로 날아다녔다. 이 비둘기들은 교통이 불편하고 전신, 전화 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섬을 오가며 폭풍 경보와 해난 통보 등에 활용되었다. 1930년대 초 체신국은 종래 팔미도를 중심으로 한 비둘기 통신을 멀리 등대가 있는 자월면 목덕도(88㎞), 태안반도 앞 옹도(91㎞), 격렬비도(122㎞)까지 확장했다. 인천해사출장소장은 앞바다 섬의 등대를 순시하러 다닐 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전서구를 갖고 다녔다.

훈련을 받았지만 간혹 임무 수행을 못하는 '고문관' 비둘기도 있었다. 1934년 1월 영종도 부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가 길 잃은 전서구 한 마리를 잡아 보호해 경기도청에 신고했다. 다리에는 '조체(朝遞) 8463호'라는 쪽지가 달려 있었다. 인천해사출장소와 팔미도 사이를 날아다니며 임무 수행하던 전서구가 잠시 방향을 잃고 갈 길을 헤맸던 것이다.

수렵금지 기간이 해제되는 가을철이 되면 전서구의 수난이 뒤따르곤 했다. 사냥꾼들은 다른 새와 구분하지 못하고 전서구들에게 총구를 겨누기도 했다. 체신국에서는 사냥꾼들의 총부리로부터 '통신병'을 보호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안에도 비둘기 통신중대가 창설될 만큼 오랫동안 비둘기 연락병의 역할은 계속되었다.

1970년대 만해도 귀소(歸巢) 능력이 있는 이 비둘기는 애완동물의 하나였다. 비둘기 애호가들의 모임인 애구(愛鳩)협회가 결성돼 1년에 한두 차례 비둘기 레이스경기를 펼쳤다. 회원들은 자신들이 사육하는 비둘기들을 먼 지점에 갖고 가 그곳에서 동시에 날려 보냈다. 비행 후 각기 자기 집에 도착한 시간을 특수 시계로 기록하여 각 비둘기가 날아온 분속을 계산하여 등수를 매기는 경기였다. 멀리 제주도에서 날려 보내는 레이스를 펼치기도 했다. 비둘기들은 시속 60㎞로 제주-서울 간을 8시간 꼬박 비행해 집으로 돌아왔다.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