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웃터골 '인천공설운동장' 첫 선서울보다 6년앞서 야구·축구 경기 열어
▲ 1920년대 웃터골 인천공설운동장의 운동회.
▲ 1983년 제64회 전국체전(인천)의 입장식 광경.
아시아경기대회가 오는 10월4일의 결승점을 향해 금빛 질주를 하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차리는 사상 초유의 잔치인지라 이런저런 아쉬움도 있지만, 그간 닦아온 기량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 아시아 젊은이들의 숨결은 뜨겁고 또한 힘차다. 그 열기가 성화와 함께 불타오르고 있는 곳은 서구의 아시아드 주경기장.

최첨단 시설과 뛰어난 조형성을 뽐내는 주경기장의 모습에서 근대스포츠 이후의 운동장(運動場) 발달사를 떠올리게 되고, 그 역사가 인천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를 가지게 된다. 대부분의 신문물과 마찬가지로 '운동장' 역시 국내 최초로 인천에서 문을 열었다. 역사의 현장은 웃터골 '인천공설운동장'이었다.

지금의 제물포고교 자리가 그곳인데, 1920년 인천부(仁川府)가 각국조계 안의 숲을 제거하고 땅을 고르는 한편, 천연 지형을 살린 스탠드까지 조성해 국내 최초의 '공설운동장'을 만든 것이다.
강덕우 역사자료관 전문위원은 최근 이 운동장이 서울의 공설운동장보다 6년 먼저 개장한 사실을 본보를 통해 밝혀 눈길을 모았다.

축구, 야구의 도입에 이어 체육활동의 근대적인 장인 운동장까지 인천에서 처음 세웠다는 데서 당시 인천 스포츠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경인선기차통학생들이 조직한 '한용단(漢勇團) 야구부'의 활동 본거지가 바로 이 공설운동장이었고, 조선인 사립학교 대운동회를 매년 봄가을 열었던 부민 화합의 장이기도 했다.

인천 부민들은 웃터골에서 펼쳐진 한일전을 통해 항일의식을 분출해 왔고, 비행사 안창남의 공중 방문 등을 통해 희로애락을 같이해 왔는데, 1934년 인천중학교에 운동장을 내 주고, 현 도원동 축구전용경기장 자리로 이전했다. 문학경기장을 비롯해 서구의 주경기장과 각 구에 세워진 최신의 경기장들을 둘러보면 격세지감과 함께 내일 만개할 인천 스포츠의 전성시대를 꿈꾸게 된다.

/조우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