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역 의미 퇴색
▲ 지난 15일 오후 인천 서구 검암동 주택가에서는 태극기를 게양한 집을 찾기가 힘들었다.
▲ 취객, 전단지, 소음으로 뒤덮인 구월동 로데오 광장 모습.
무늬만 광복절이었다. 태극기는 실종됐고, 유흥만이 난무했다. 제69주년 광복절은 '3일 연휴'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15일 오후 3시쯤 인천 서구 검암동 A아파트. 4개 동 총 280세대의 이 아파트에서 태극기를 게양한 집은 21곳에 불과했다.

주변의 빌라, 원룸 건물에서는 아예 태극기를 볼 수 없었다. 부동산 현수막만 나부꼈다. 대부분의 건물에는 태극기 게양대조차 설치되지 않았다.

서곶로와 승학로가 만나는 검암사거리에서는 26개의 현수막이 사방을 점령하고 있었다. 태극기는 하나뿐이었다. 그나마 게양된 태극기는 시커멓게 얼룩지고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오후 5시쯤 중구청 앞 개항장 문화지구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집을 제외하고는 일본풍으로 꾸며진 건물들 사이로 태극기를 찾기 힘들었다. 중구청 별관 앞 일본 복고양이 조형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들만 보였다. 연휴를 맞아 인파가 몰린 차이나타운에서도 광복절의 분위기를 느끼긴 어려웠다.

택시기사 구모(59)씨는 "태극기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며 "예전 광복절은 분위기부터 달랐고, 역사적으로 중요시됐는데, 지금은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지 점점 의미가 퇴색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10시30분쯤 구월동 로데오광장.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호객꾼이 젊은 여자들의 손목을 붙잡고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행인들은 전단지를 슬쩍 보고는 길에 던지기 일쑤였다. 광장 바닥은 이들이 버리고, 호객꾼들이 뿌린 전단지로 지저분했다.

골목 안은 술집과 노래방 홍보물로 가득했다. 소음도 심했다.

술에 만취한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편의점 앞 화단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광장 어디에서도 '그날'의 의미를 기리는 정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광복절이 '술 마시고 노는 날'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로데오광장의 한 건물 경비원은 "사람들이 술에 취해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데, 보기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광복절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한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글·사진 구자영·이순민 기자 ku90@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