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2)인천팔경과 팔경시(八景詩) - <강화십경>의 남대제월]
▲ <강화부지> 안의 내성도(內城圖). 하단에 남장대가 위치하고 있다.
'팔경(八景)'은 '절경(絶景)'의 또 다른 명칭이다. '○○팔경'은 '○○' 공간의 절경을 의미한다. 팔경은 北宋代의 문인화가였던 宋迪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에서 출발한다. 중국 湖南省 洞庭湖 일대의 소강과 상강이 만나는 지역이 '소상'인데 이곳의 계절에 따른 운치를 여덟 제목으로 나누어 화폭에 담은 게 '팔경도'이다. 회화의 제목이 각각 平沙落雁, 遠浦歸帆, 山市晴嵐, 江天暮雪, 洞庭秋月, 瀟湘夜雨, 煙寺晩鍾, 漁村夕照으로 중국에서는 '瀟湘八景'을 절경의 대표적인 예로 여겼다. 많은 시인 묵객들이 팔경을 소재로 시를 창작했다.

<송도팔경>, <관동팔경>, <문경팔경> 등을 비롯해 인천과 관련해 <강화십경>, <교동팔경>, <영종팔경>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후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여덟 공간의 절경을 지칭하는 ○○팔경이 자리를 잡았다. 인천의 경우, 특정 공간과 관련된 <계양팔경>, <부평팔경>, <서곶팔경>, <용유팔경>, <덕적팔경>, <장봉팔경>이 있으며 전체를 포괄하고 있는 <인천팔경>이 5개가 있다.

<강화십경>은 강화유수 김로진(金魯鎭·1735~1788)이 관할지역을 시찰하다가 풍광이 뛰어난 곳에 문인들의 자취가 뜸한 것을 애석하게 여겨 선정한 것이다.

南臺霽月 남산대에서의 비 개인 날에 뜨는 달
北場春牧 북장에서 봄에 기르는 말
鎭江歸雲 진강산으로 돌아오는 구름
積石落照 적석사에서 바라보는 낙조
鰲頭漁火 오두돈대에서의 고기잡이 불
燕尾漕帆 연미정의 조운선
甲城列譕 갑곶 성에 벌려있는 초루
普門疊濤 보문사에 밀려오는 파도
船坪晩稼 선두평에서의 늦 농사
星壇淸眺 참성단의 맑은 조망

고재형(高在亨·1846~1916)은 김로진이 선정한 <강화십경>을 소재로 삼아 시를 지어 <화남집>에 남겼다.

南山臺上久踟躕 남산대에 올라 오래도록 머뭇대는데
霽月浮來太極圖 맑게 갠 달 떠오르니 태극도와 같구나
流峙如看金鏡裡 흐르는 물과 높은 산이 밝은 달 속에 보이는 듯
昭昭十景一江都 빼어난 십경 가운데 강도에서 첫째이어라

<강화십경>의 첫 번째 남대제월(南臺霽月)이다. '南臺'는 남장대나 장인대의 또 다른 명칭으로 강화부의 남산 위에 있는 장대(將臺)이다. 장대는 장수(將帥)가 올라서서 명령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남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기에 가을에는 열병을 주도하기도 했다.

작자는 비 개인 뒤에 맑은 달을 감상하고자 남장대에서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비 갠 뒤인 만큼 부유물이 사라진 하늘에 떠오른 달은 밝기만 한 게 아니라 달의 내부의 부조(浮彫)를 알아볼 정도로 선명했다. 마치 흐르는 물과 높은 산이 보이는 듯, 달의 내부 모습이 선명했기에 태극도라 했던 것이다. 감동은 달을 관망하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달빛에 의해 드러난 남장대 아래의 모습은 단순한 밤 풍경이 아니었다. 예사 달빛으로 포착할 수 없는 대상들이 밤 풍경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남장대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제물진, 서쪽으로 석모도, 남쪽으로 고려산과 진강산, 북쪽으로 부내(府內)의 촌락들을 조망할 수 있는바, 유독 밝은 달빛을 통해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위로는 지독하리만큼 맑고 둥근 달, 아래로는 달빛에 의해 드러난 일상적이지 않은 풍경, 그리고 그 사이의 남산대에 서 있는 작자에게 그것은 낯선 경험이었다. 그래서 '빼어난 십경 가운데 강도에서 첫째'라며 김로진이 선정했던 '남대제월(南臺霽月)'에 동의하고 있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