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복순은 김이 풀풀 치솟는 고깃국을 대접에 떠서 방으로 들어와 밥그릇 옆에 놓으며 상위를 한번 살펴봤다. 제상 제일 위쪽 벽쪽에는 고 김영달 상사의 사진액자가 중앙에 놓여 있고, 그 앞 제1열에는 촛대와 수저와 고봉으로 퍼담은 이밥그릇이 뚜껑을 덮어쓰고 놓여 있었다. 그 옆에 맨 마지막으로 들고 들어온 국 대접과 수수살미떡과 백설기가 한 접시에 담겨 있었다. 제2열 좌측에는 돼지고기를 저며서 만든 육적과 돼지비계와 채소를 썰어 넣고 붙인 녹두지짐과 두부전, 어적이 놓여 있었다. 제3열에는 두부와 물고기를 듬쑹듬쑹 썰어 넣고 푹 끓인 어탕이 놓여 있고, 제4열에는 나물반찬과 간장, 백김치 그릇이 놓여 있었다. 제5열에는 그녀가 직장에서 애써 구해온 밤과 대추, 그리고 사과 접시가 놓여 있었다.

 성복순은 이만하면 저승에 있는 고 김영달 상사도 기뻐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풀고 갈음옷(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인영아, 오늘은 아버지 오시는 날이다. 자더라도 아버지가 바로 볼 수 있게 상 앞으로 나와서 자거라, 잉?』

 성복순은 새근새근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는 인영이의 요때기를 제상 앞으로 끌어와 눕혀놓고는 아들의 뺨에다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촛대에다 불을 밝히고 30촉짜리 알전등을 껐다. 방안은 이내 고즈넉한 적막감과 접신하기에 좋을 만큼 매질 고운 어둠이 밀려와 촛불 가에서 성스러운 원을 그려 주었다. 성복순은 자신이 들어온 부엌 쪽문을 조금 열어놓은 뒤, 지난 봄에 그녀가 직접 매실을 구해 담근 술을 한 잔 남편 영정 앞에 올렸다. 그리고는 조용히 일어나 절을 올렸다.

 어릴 적부터 항일 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읽거나 수령동지의 현지지도 선전내용을 들으며 손뼉을 치고, 열광하는 감정이입훈련을 받으면서 성장한 세대라서 그런지, 어른거리는 촛불 아래서 남편의 영정을 바라보며 절을 한 번 올렸는데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눈길과 마주치자 이내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치솟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치솟는 두 줄기 눈물을 훔치면서 자신은 아직도 고인이 된 김영달 상사를 잊지 못하고 끔찍이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확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그 남편이 생전에 그토록 원하던 소망을 자기의 힘으로 일구어냈다는 성취감 때문에 그만 남편의 영전에서 어리광을 부리듯 흑흑 흐느끼기 시작했다.

 『려보! 당신이 생전에 길케 아껴 주셨던 복순이야요. 해마다 기일이 되면 이렇게 당신이 생전에 남겨놓고 가신 사진을 통해 당신과 마주하지만 금년은 유난히도 당신의 모습이 그리운 것 같군요. 우선 이승에 남겨 놓고 간 당신의 안해가 지난 봄에 친정집 뒷산에 올라갔다가 탐스럽게 매달린 매실나무 열매를 보고 당신 생각이 나서 한 주머니 따와서 담근 우림술이니까 술부터 한 잔 마시라요. 그 먼 저승에서 아직도 날 잊지 않고 이케 달려왔으니 목인들 얼마나 마르갔습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