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시절에 사별하게 된 부부 사이라 하지만 그 사이 세월도 어지간히 흘렀는데도 딸은 사위의 제삿날만 다가오면 죽은 사위를 못 잊어 며칠 전부터 지극정성으로 제수를 장만했다. 엄씨는 딸의 그런 모습이 예사로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아이 때문일까?』

 곤히 잠들어 있는 외손자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엄씨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간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인영이는 바라보면 볼수록 앞으로 큰 재목이 될 동량처럼 귀한 느낌은 들지만 죽은 김서방의 모습은 요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따금씩 닭이나 단고기(개고기)를 싸들고 와서 딸의 시중을 받으며 끓여먹고 가는 큰아들 친구 김유동(노동교양소 부비서)이도 닮지 않았다.

 대관절 이 아이 아비는 누굴까?

 엄씨는 잠들어 있는 외손자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혼자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사위 제삿날 나잇살이나 먹은 늙은이가 별 걸 다 생각한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씨는 곤하게 잠들어 있는 어린 외손자를 아랫목으로 옮겨 눕히고는 북향 벽 쪽에다 네모진 큰상을 폈다. 그리고는 딸이 방으로 들여놓은 물행주로 큰상을 쓱쓱 문질러 닦았다.

 그때 성복순은 부엌 쪽문을 열고 며칠 전부터 일구어놓은 제수를 둥글넓적한 쟁반에 담아 방으로 들여보냈다. 엄씨는 딸이 방으로 들여보낸 제수 그릇을 하나씩 들어 제상 위에 올렸다. 희미한 전등불 아래 엎드려 딸이 일군 제물을 받아 상위에 진설하다 보니 제상은 그만 가득한 느낌이 들었다. 엄씨가 사는 동림군은 옛날부터 서해 바다와 맞닿아 있는 염주군·철산군·선천군과 맞붙어 있어 내륙에 사는 인민들에 비해 어물은 쉽게 구할 수는 있다고는 하지만 어느 사이 통마리 고기까지 구해 와서 보기좋게 어적을 만들어 제상 위에 올려놓는지 죽은 사위에 대한 딸의 정성이 갸륵하기까지 했다.

 『언제 물가에 나갔더냐?』

 엄씨가 쪽문으로 어탕과 나물반찬을 들여놓는 딸을 보고 물었다. 성복순은 술병과 술잔을 들여놓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요. 청강(동림군 향산령 비탈면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흘러내리는 길이 28.5㎞ 강) 가에 사는 가내작업반 동무들한테 미리 부탁해 구한 것이야요.』

 엄씨는 딸이 노동교양소에 들어갔다 교화노동을 마치고 나온 이후 큰아들 친구인 김유동 부비서의 배려로 66호 노동교양소 가내작업반 식료품조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래도 용하다. 이 한겨울에 어케 저런 통마리 어물들을 다 장만했네?』

 『우리 동림군에 매봉저수지도 있고 청강이 흘러드는 서해 바다도 있는데 영인이 아버지 제삿날 기깐 물고기 몇 마리 상위에 올려놓는 게 대수갔시요. 인간 만사는 다 마음먹기 나름이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