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할 사람을 붙잡고 오늘따라 오마니가 와 자꾸 이런 말을 할까?

 성복순은 엄씨의 눈길이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아 자리를 피하듯 부엌으로 나왔다. 영인이를 직장까지 업고 가면 암죽을 준비해 놓지 않아도 되지만 집에다 놔두고 가면 낮에 먹일 암죽 준비해 놓고 가야 하는 것이다. 성복순은 어젯밤 제사 때 쓴 백설기 떡을 한 조각 떼어내 냄비에 부수어 넣고, 물을 넉넉하게 부은 뒤 사탕가루를 조금 뿌려 화로에다 올려놓고는 집을 나왔다.

 오마니가 요사이는 와 길케 영인이 아버지에 대해 궁금증을 보이며 유동 오빠 이야기를 자주 할까?

 성복순은 깨끗하게 빨아놓은 큰 보자기를 삼각형으로 접어 머리수건처럼 덮어쓴 뒤, 그 위로 개털목도리를 칭칭 감아 불끈 동여매며 잰걸음으로 걸었다. 퇴근할 때 오마니와 영인이 먹거리라도 넣어 오려고 등에다 식량사업 배낭을 메고 나와서 그런지 눈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등에 멘 배낭이 덜렁거렸다. 그녀는 배낭의 어깨 끈을 바싹 당겨 조이며 초막골 쪽으로 바삐 걸어갔다.

 좁고 삐뚤삐뚤한 우마차 길이 끝나면서 군 소재지로 들어가는 신작로길이 열렸다. 그 신작로 길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 반시간 가량 등에 땀이 밸만큼 바삐 걸으니까 신작로 가에 일렬로 늘어선 연립주택들이 눈을 덮어쓴 채 길다란 고드름을 매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성복순은 그 길가의 연립주택들을 지나쳐 동림 읍내 쪽으로 걸었다. 직장에 출근할 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읍내와 가까운 자연부락과 단층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마을 주변에는 젊은 노동자들이 뽀얀 입김을 뿜어 올리며 길을 따라 바삐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따금씩 화물자동차도 눈밭 위에 바퀴 자국을 남기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 숨차.』

 성복순은 불어오는 찬바람을 피하듯 고개를 숙인 채 정신없이 걷다가 눈썹 위에 맺힌 이슬을 닦으며 앞을 쳐다보았다. 동림군 소재지가 있는 읍내의 모습이 보이면서 저금소(은행)·사회안전부(경찰서)·인민위원회(군청)·인민병원·국영상점·단고기집·기차역·동림인민학교·고등중학교·편의봉사점·군당위원회 청사와 8·3인민소비품직매점 등 공화국 큰 도시를 찾아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국가기관들과 국영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읍내 큰길이 나타났다.

 성복순은 그 큰길을 지나 8·3인민소비품직매점 앞을 걸어가면서 혼자 쿡 웃었다. 문득 1986년 봄 동림군 철산리 화강암채석장에서 6개월 간의 무임금 노동교화형을 마치고 출소하였을 때가 생각났던 것이다. 성복순은 그때만 해도 8·3인민소비품이란 것이 대관절 뭘 말하는지 말뜻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교화소에서 우연히 만난 김유동 부비서의 배려로 이곳 가내작업반 식료품소조에 배치되어 뱃속의 아이를 낳은 뒤, 서너 달쯤 복무하다 보니 8·3인민소비품이란 것도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