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군경 부문 장상구씨 등 9명 수상 … 24일 대한적십자 인천지사서 시상식
인천일보는 지난 5일 본사 5층 회의실에서 제26회 인천보훈대상 심사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심사에는 인천시 배동환 사회복지봉사과장, 인천보훈지청 서정택 보훈과장, 대한민국 전몰군경 미망인 윤인자 사무국장, 대한민국 전몰군경 유족 이기호 인천지부장, 대한민국 상이군경 신상규 인천지부 사무국장, 인천일보 김칭우 사회부장이 참석했다.

인천일보는 올해 보훈대상부터 특별보훈대상을 기존 1명에서 4명으로 늘려 보훈의 의미를 되새기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참뜻을 기리기로 했다.

또 오는 24일 오후 2시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4층 강당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보훈가족을 위문하고 의미를 드높이는 다채로운 행사를 갖기로 했다.

인천부훈대상 6개 부문 9명의 수상자는 상이군경부문 장상구(68·상이군경회 인천시지부), 장한아내 부문 김선분(79·상이군경회 인천시지부), 미망인 부문 김등자(71·전몰군경 미망인회 인천시지부), 유족부문 김억성(90·전몰군경 유족회 인천시지부), 유자녀 부문 김유식(74· 전몰군경 유족회 인천시지부), 특별보훈 부문 이증(75·무공수훈자회 인천시지부 중구지회), 박형순(74·고엽제전우회 인천시지부 남동지회), 이진원(84·6·25참전유공자회 인천시지부), 이화식(60·특수임무유공자회 인천시지부)씨로 결정됐다.


▲ 상이군경 부문 - 장상구
△상이군경 부문=장상구(68·대한민국상이군경회 인천광역시지부)

장상구씨는 신체적,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속적인 봉사 활동 등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큰 공을 세운 것이 수상의 초석이 됐다.

장씨는 1967년 8월에 육군에 입대해 같은해 12월 맹호부대 용사로 월남전에 파병, 1968년 8월 퀴논지구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후 일병으로 명예제대했다.

그는 신체장애(상이6급)로 어려운 생활환경을 극복하고 단체장으로 활동하며 호국안보의식 선양활동, 국가보훈시책사업홍보 등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장한아내 부문 - 김선분
△장한아내 부문=김선분(79·대한민국상이군경회 인천광역시지부)

김선분씨는 군생활 중 중상을 입어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해 헌신하며 3남1녀를 번듯한 성인으로 키워냈다.

김씨의 남편은 1963년 4월, 작전 중 발생한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김씨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했으며, 3남 1녀를 훌륭하게 양육했다.

나아가 부상당한 병사의 일에도 솔선수범해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국가 유공자의 아내로써 모범이 됐다.


▲ 미망인 부문 - 김등자
△미망인 부문=김등자(71·대한민국 전몰군경 미망인회 인천광역시지부)

김등자씨는 남편의 죽음을 절대로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나아가 미망인단체 활동에도 박차를 가해 지역사회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김씨는 1971년 남편 고복수씨를 사고로 잃고 잠시 실의에 빠졌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딸에게 아버지의 애국심을 본받도록 극진히 교육했다.

남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자 미망인회 동구지부 총무로 10여년, 지난 2009년부터는 지회장직을 역임하며 회원들의 단결에 힘쓰고 모범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 유족 부문 - 김억성
△유족 부문=김억성(90·대한민국 전몰군경 유족회 인천광역시지부)

김억성씨는 먼저 가슴속에 묻은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둘째 아들이 1978년 8월 불의의 사고로 순직하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아들을 나라에 바쳤다는 생각으로 남은 자녀들을 훌륭한 대한의 자식으로 성장시켰다.

먼저 떠난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불우노인 돕기, 홀몸노인 방문 등 지역 사회 발전에 힘을 쏟았으며, 타 유족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

한편, 김씨는 지난 2006년부터 치매로 투병생활 중에 있다.


▲ 유자녀 부문 - 김유식
△유자녀 부문=김유식(74·대한민국 전물군경 유족회 인천광역시지부)

김유식씨는 13살의 어린 나이에 가장이 돼 그 역할을 누구보다 훌륭히 소화해 냈다.

지난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지리산에서 아버지가 전사함에 따라 김씨는 3년뒤 13살의 어린 나이에 인천대한제분회사에 입사해 가장 역할을 했다.

그후 8년뒤인 1961년 결혼해 2남2녀 모두 대학을 졸업시켜 훌륭한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냈다.

이후 지난 2007년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인천광역시지부 동구지회장으로 임명된 후 유족회의 발전에 최선을 다하고, 나아가 이북 5도민 실향민 가정을 돌보며 봉사했다.


▲ 특별보훈 부문 - 이증
△특별보훈 부문=이증(75·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인천시지부 중구지회)

이증씨는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평화통일과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호국안보의식을 고취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이씨는 지난 1959년 해군 정보분야로 인천지역에서 장기근무하면서 군보안 측정관으로 지역사회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또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도 서울시청 앞 광장, 자유공원 등에서 각종 시국 안보궐기대회, 주변 정화 활동에 주력했다.


▲ 특별보훈 부문 - 박현순
△특별보훈 부문=박형순(74·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 인천시지부 남동구지회)

박형순씨는 월남전에 참전해 국가의 발전에 큰 힘을 보탰고, 투철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각종 안보행사에 누구보다 먼저 참석했다.

박씨는 지난 1969년부터 19개월간 월남전에 참전해 국가의 발전과 힘을 기르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인천대공원, 소래포구 등 환경정화활동에도 참여했다.

아울러 환경캠페인, 학교폭력 예방활동 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활동에도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으며 참석했다.


▲ 특별보훈 부문 - 이진원
△특별보훈 부문=이진원(84·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인천광역시지부)

이진원씨는 누구보다 6·25참전 용사들을 위한 활동을 많이 했다. 이씨가 있어서 6·25참전 용사들에 대한 처우가 나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6·25 참전유공자 회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한 참전명예 수당을 인상시키는 데 앞장 섰으며 지역내 95개 학교에 6·25 바로알기 교육을 진행해 학생들의 안보의식을 고취하는데 기여했다.

또 6·25 참전유공자 중 홀몸 회원 등 관리에 최선을 다해 다른 시지부에 귀감이 됐다.


▲ 특별보훈 부문 - 이화식
△특별보훈 부문=이화식(60·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인천광역시지부)

이화식씨는 인천시 내의 각종 충혼탑을 건립해 대국민 홍보 및 애국심 고취에 발 벗고 나섰다.

이씨는 월미도, 영흥도, 백령도의 충혼탑과 팔미도 역사기념관 건립을 추진해 보훈단체로서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뜻을 기렸다.

나아가 특수임무유공자로서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인천지부장을 지내며 보훈행정, 군 가족의 복지 증진을 위해 힘을 쏟았다.

/김근영 기자 kky8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