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성복순은 새벽같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어젯밤 제사를 지내고 부엌으로 내놓은 빈 그릇들이 설거지도 되지 않은 채 개수통으로 쓰는 플라스틱 함지에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는 큰 솥가마에다 불을 지펴 우선 물부터 한 솥 끓였다. 그리고는 뜨거운 물을 몇 바가지 퍼내어 어젯밤 제사 때 쓰고 내놓은 빈 그릇들을 말끔히 씻어 시렁 위에 올려놓은 뒤 어탕을 데워 간단히 조반을 마쳤다. 그리고는 서둘러 설거지와 세면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가름옷으로 갈아입고 출근준비를 했다.

 『밖에 눈이 내려 칼바람이 몰아친다. 오늘 같은 날은 영인이를 집에 놔두고 가거라. 아이 둘러 업고 미끄러운 길 걸어가다 넘어디디 말고….』

 세안을 마치고 들어온 엄씨가 딸의 출근을 걱정했다. 온 세상이 눈 속에 파묻혀 꽁꽁 얼어붙어 있는 이 동절기에, 동림군 로동자구에 있는 66호 노동교양소 가내작업반까지 두 발로 타박타박 걸어가야 할 딸의 처지를 생각해 보니까 코끝부터 먼저 얼어빠질 것 같았다. 눈이 오지 않아도 한 시간은 좋게 걸리는 그 먼길을 이렇게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어케 아이까지 둘러 업고 걸어가는가 말이다. 엄씨는 딸이 걸어가야 할 십 리 길을 생각하니까 그만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아 꺼질 듯이 한숨을 쉬었다.

 『애구, 우리 마을에도 빨리 빠스라도 좀 다녔으면 좋으련만…언제 기런 시절이 올디….』

 『오늘 같은 날은 눈이 내려 빠스가 다닌다 해도 소용 없시요. 눈길에는 그저 11호차(두 다리로 걸어다니는 것을 11호차 타고 다닌다고 함)가 제일 좋으니까니 렴려 마시라요.』

 『기어이 아이를 업고 가갔다는 말이가?』

 『영인이가 너무 설쳐대서 집에 놔두면 오마니가 힘드실 텐데 하루 종일 견뎌 내갔시요?』

 『아이 업고 눈길 걸어가다 넘어지면 아이고 어른이고 다 다치는데 내가 기걸 뻔히 알면서 어케 업혀 보내간?』

 하긴 그럴 듯도 하다 싶어 성복순은 고개를 끄덕이다 엄씨를 바라보았다.

 『오늘 오마니 배급소 나가는 날이잖아요?』

 『원래는 오늘이디만 어제 인민반장이 찾아와 이번 달 배급도 늦어진다고 했다.』

 『기카면 어캅네까? 지난번 배급도 열흘이나 넘게 늦게 나왔는데….』

 『외국에서 들어와야 할 알곡이 들어오지 않아 길타는데 어카네?』

 엄씨는 식량 배급 날만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난 1984년 9월, 「남조선 수재민을 구하자」고 당의 선전선동일꾼들이 마을 인민들을 모아놓고 선전한 이후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그 긴 세월 동안 식량이 제 날짜에 제대로 배급된 날이 없었다. 1984년도에는 수재를 입은 남조선 인민들에게 입쌀 5만 석(약 7천3백t)을 보내느라 식량사정이 긴장되어 배급이 늦게 나온다고 인민반장으로부터 그 사연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