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복순은 이밥그릇 옆에 놓인 수저접시에서 젓가락을 집어내어 녹두지짐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술안주로 먹으라는 뜻이었다.

 『술 맛이 어떻시요? 당신이야 내가 마련해주는 음식이라면 모두 다 맛있다고 했으니까 술맛을 묻는 내가 더 바보같이 느껴지갔지요. 그렇지만 려자라는 존재는 아침저녁 그런 소리를 듣고 살아야만 자기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도 느끼고, 나 자신이 왜 살아 있어야 하는가 하는 존재의 필요성도 느낀다니 나도 여전히 공화국의 다른 려성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에미나인가 봐요….』

 성복순은 주책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고는 다시 남편의 영정을 바라봤다.

 『려보! 이번 제사 때는 우리 인영이 이야기를 좀 해야갔시요. 요사이 저는 우리 인영이 재롱부리는 거 보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야요. 당신도 먼 하늘 나라에서 우리 인영이 쑥쑥 자라는 거 보니까 대견스럽지요? 당신은 저랑 만나기 전부터 아기를 생산할 능력이 없어 애육원에서 아이를 하나 데려다 키우자고 하시다 그 뜻도 못 이루고 이승을 떠나고 말았지만 저는 사실 그때 말은 못하고 있었지만 반대하는 입장이었시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생식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왜 아무 인연도 없는 아이를 애육원에서 데려와 당신의 자식이라고 공민증에다 입적시키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네다. 저는 려자로 태어나서 그런지, 아니면 저한테 아이를 생식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 부부의 몸을 검진한 군의(軍醫)한테 들어서 그런지는 모르갔지만 「나 자신이 직접 배불려서 낳지 않은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다」 라는 인식이 평소 머리 속에 꽉 박혀 있던 려자라서 당신이 애육원에서 아이를 한 사람 데려와 당신의 자식으로 입적시키자고 했을 때 싫었습네다. 그렇지만 우리 조국을 위해 군대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하다 자식을 낳아 키울 수 있는 생식 능력마저 잃어버린 당신한테 그런 내 뜻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신 가슴에 천추의 한을 남기는 소리 같이 느껴져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당신은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을 사이도 없이 그만 이승을 떠나고 만 것 입네다. 정말 너무나 가슴 아프고 절통한 사연이라 어디 드러내놓고 말도 못하고 혼자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 어느 날 저는 이를 깨물었습네다. 당신의 대를 이을 만큼 괜찮은 남자가 보이면 술을 먹여 간음을 해서라도 그 남자의 씨앗을 받아 배태하고, 그 남자 몰래 아이를 낳아 당신의 자식으로 공민증에 입적시켜 드리겠다고 말입네다. 그러다 곽인구 하사를 만났던 것입네다. 당신이야 저승에서 내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내가 당신 여한을 풀어주기 위해 곽인구 하사와 계획적인 간음을 한다고 생각하셨갔지만 저는 그 이후 정말 말못할 고통을 당했습네다. 6개월 간의 무임금 교화노동에다 배속의 아기를 강제로 중절수술 당하지 않기 위해 친정 오빠의 친구인 김유동 부비서의 기쁨조원으로 생활하면서 갖은 아양을 다 떨며 깔개노릇까지 했던 것입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