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 시인'강연'·적산가옥 사진미학'르포'등 수록
   
 

인천작가회의가 문학계간지 <작가들> 겨울호(통권 47호)를 출간했다.

이번호 <강연>은 민영 시인이다. 시대와 젖줄을 대며 혼신을 다해 시업(詩業)을 일궈온 시인을 통해서 맹렬정진의 벼리를 세워온 문학정신을 듣는다.

철원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살다가 해방과 함께 귀환하여 분단과 전쟁의 사나운 역사를 살아오며 기댈 곳 없는 떠도는 영혼으로 살아온 시인의 증언은 경청에 값한다.

여든 시인의 말마따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힘든 작업에 비해 소득이 적은 예술을 해오며 시대를 안광(眼光)으로 투시한 지혜를 독자들과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르포>는 작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나가는 지면이다. 인천이라는 장소성이 갖는 삶에 초점을 맞춰 생생한 육성과 현장을 사진으로 만난다.

'청관(淸官)'과 '화수부두', '양키시장' 등 인천의 장소를 사진에 담아 온 작가는 이번엔 일본조계에 위치한 적산가옥에 주목한다. 인천 개항과 함께 건축된 100년이 넘은 적산가옥을 통해서 개항도시로서 인천의 역사적 흔적을 사진미학의 실루엣으로 느낄 수 있다.

덕적도 주민인 이덕선의 덕적도 모래 채취에 대한 '호소'는 70년대 국민관광단지로 주목되었던 서포리해수욕장의 퇴락과 최근 벌어지고 있는 무분별한 모래채취를 둘러싼 갈등을 섬주민의 입장에서 육성으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모래 한 알이 지니고 있는 우주적 삶의 원리를 일깨우는 작은 실천과 관심은 소중하다. 이 글은 섬의 착취가 얼마나 공공적인 삶의 질서를 위반하고 주민의 삶을 공도화(空島化)시키는지 생생하게 질타하고 있어 무관심의 영역으로 방치되었던 섬주민의 생활을 다시금 살필 수 있는 글로 주목을 끈다.

김경은은 인천의 구도심인 만석동으로 우리의 불편한 시선을 이끈다.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영화의 공간이기도 한 만석동과 북성동, 차이나타운 등 그 일대 주변부를 탐사해 오늘 우리 삶의 빈 장소를 채워준다.

한 때는 흥성한 부두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쇠락한 항구도시의 표정이 을씨년스럽지만, 여전히 서민들에게는 싱싱한 새우젓이나 꽃게 등 잡어를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현재>에서는 판화가 홍선웅은 동백꽃의 계절미로 우리의 눈을 씻어주고 있다. 벌써 상춘(賞春)이 우리 곁에 당도한 듯이 그의 칼끝에서 묻어나오는 붉은 동백꽃의 자태가 삶의 열정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그동안 연재됐던 이상실의 장편소설 <호숫가에서 길을 찾다>와 김영욱의 장편 청소년 소설 <지하 0층>이 이번호로 마무리된다. 김재영과 조혁신의 신작 단편도 개성과 풍자를 한껏 발산한다.

김재영은 '특별한 만찬'에서 숨어 살아온 존재들이 털어놓는 특별한 과거, 그리고 그 과거를 잊으려 애쓰면서 삶과 사랑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고, 조혁신은 '벌레'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대립하는 세계에서 미물로 살아가는 인간의 비애적 삶을 포착하고 있다. 시란에서는 이상국, 호인수, 김길녀, 임성용, 조동범, 김명남, 심명수, 김일영, 김림, 김은경 등 열 분의 다채로운 시세계를 만날 수 있다.

<노마네>는 안학수, 김은영 동시인과 정연철 동화작가를 초대했다. 문학논단에 강병융, 조성면 문학평론가의 두 평문은 번역문학과 소수자문학 양상에 주목함으로써 문학과 현실의 조응을 논한다.
강병융은 오늘날 러시아인의 폭넓은 독서애와 러시아문학의 번역지원 현황에 대해서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정부 주도가 아니라 '자발성'에 기초한 러시아인의 번역에 대한 합주(合奏)가 고전문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문학에까지 고조되고 있다는 전언은 우리의 번역현실에 비추어 부끄러움을 준다.

조성면은 한국의 과학소설연대기에 주목함으로써 오늘날 몰이해로 창작보다는 번역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과학소설 장르의 문화 현상을 독해한다.

근대문학과 마찬가지로 동도서기론에 입각하여 출발한 과학소설의 역사가 내파의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깊은 공감을 보낸다. 비평흐름에도 두 분의 평론은 현실의 촉수를 살필 수 있는 글로 독자와 만난다.

김대현은 '증후 없는 증상'을 통해, 오창은은 '도시 순례자'들의 발자국을 따라 연대와 소통의 윤리를 작가들의 목소리로 직핍한다. 그밖에 권경우, 이근일, 송수연의 서평과 지난 2년 동안 인천 앞바다의 섬을 발로 답사를 하면서 우리의 눈과 귀를 씻어준 사진가 조명환의 사진에서 영흥도의 겨울을 만날 수 있다. 374쪽. 1만3000원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