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들이 쟁의의 한 수단으로 준법투쟁이란 것을 내세운다. 앞서도 있었고 차후도 없다고 단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준법투쟁을 유발시키는 것은 근로자들을 얕보는 업주의 과욕 때문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는 온통 불법 투성이다. 이른바 법을 지키면 손해본다는 인식이 곳곳에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하게 표현하자면 법을 어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거기에다 이령비령(耳鈴鼻鈴)까지 동원되는 세상이고 보면 우리의 이웃도 믿을 수 없다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의료대란을 가져오게된 것도 따지고 보면 상호불신에서 비롯됐다. 상호불신을 갖게한 것은 협의적으로는 의료업계와 정부의 책임이 크다.

 충분한 대화로 결론을 도출해내지 못하고 철저한 대비도 없이 말듣지 않으면 형사 처벌을 하겠다는 엄포정치가 가져온 산물이다. 의권(醫權)을 포기하는 일에 동참한 인술(仁術)이 이땅에서 사라진지 오래됐다는 사실은 당국은 모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인턴 생활을 갓 면하고 신설병원의 과장자리를 얻어 특진료라는 것을 붙여 먹는 것을 나몰라라 방치 해오던 당국이 엄청난 이권을 떼간다는 이번 조치를, 조직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이 가만 있을리 없다. 이제 당국은 호미난방(虎尾難放)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의료업계의 말대로 원점으로 돌리려 하니 법을 또 고쳐야 하고, 다음은 약사들의 집단 행동을 막을 길이 어쩌면 의사들보다 더 강력한 반대 운동이 빚어질 것을 불을 보듯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당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호언 그대로 반대 의사들을 모두 사법처리 할 것인가. 분업 대신에 종전 수입에 상응한 대가의 보상을 제시할 것인가. 아마도 이 두가지 방법은 모두 난제일 것이다. 전자는 엄포에 그쳐야 하고 후자는 국민의 부담만 가중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의학대전의 첫 머리에 의술은 인술이라고 했다. 요즘도 인술을 베푸는 인자한 의사를 때때로 볼 수가 있다.

 그런 반면에 교통사고 환자를 웃돈 주어 유치하고 빨리 수술 하면 치유기간을 줄일 수 있는 것을 뻔히 들여다 보면서 수삼일식 끌다가 환부가 썩어 들어갈 무렵에야 수술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병·

의원의 간판을 보면 인술을 표방하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자혜, 광제, 성모, 기독, 지성, 적십자, 녹십자 병원 등등 번지르르한 이름의 간판을 내세우고 의료 거부라는 작태를 보이는 이율배반적인 행태에 할 말을 잊게한다. 첫째는 당국의 잘못이라 할지라도 꺼져가는 생명을 의사의 신분으로 외면하는 철면피라면 시신(屍身)에 칼을 대는 비겁자의 행동과 다를바 없다. 전쟁터에서도 적병을 치료해 주는 것이 의사의 본분일진데 내 부모의 형제요 내 나라 국민의 생명을 불모로 의료거부를 하는 극히 이기적인 행동에 자라나는 2세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느끼겠는가.

 휴진을 정당화 하기위해 「오늘부터 여름휴가」라고 써 붙인 병원문을 보고 돌아서는 환자들이 당신의 가족이라면 피눈물이 날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가.

 이처럼 의약분업을 막다른 골목까지 내모는 정부의 의료정책은 국민을 너무 얕보고 백년전의 몽매한 백성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정부는 무엇보다 의료대란을 하루속히 막아 한사람의 귀중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는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저지른 정책 실패가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고 있다. 의약분업 마찰을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부담증가로 전가시킨다면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저항을 초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