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준 계장은 아내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번쩍 들곤 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어쩌면 영원히 통일을 못할 지도 모른다는, 정말 가당찮은 상상 속에 휘말릴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조국이 남북으로 분단된 채 남쪽은 남쪽대로, 북쪽은 북쪽대로, 자기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빠져 40여 년(인구가 대학교 졸업반 때인 1989년 12월의 시점에서 계산할 경우)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오고 가지도 못한 채 적대적 관계로 살아오느라 휴전선 너머에서 살고 있는 저 2000만 명의 북녘 동포들은 이제 북녘의 핵심지배세력들처럼 의식 자체가 변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북녘의 핵심지배세력들만 권좌에서 물러나면 나머지 동포들은 자연적 남쪽사회 국민들과 한 몸이 되리라고 믿어왔는데, 적대적 관계로 서로 등을 돌리고 산 4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이 그런 가능성을 더욱 희박하게 만들어 놓는 듯했다.

 그런 상상은 인구와 정동준 계장과의 공동생활에서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물을 놓고 같이 보아도 인식하는 방향과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가령, 정동준 계장이 우리 민족이 추구해야 할 통일방안은 남북 상호간의 합의에 의한 평화적 통일 뿐이야. 어느 일방의 군사력에 의한 무력통일은 안 한 것보다 더 못한, 상상 못할 희생만 자초할 뿐이야, 하고 역설하면 인구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불구대천의 원쑤들과 마주앉아 무슨 통일을 논합니까? 저는 월남식 통일 외에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구는 그러면서 『김일성 수령과 지도자(김정일) 동지를 배신하고 사선을 넘어온 저도 머릿속에 박힌 수령님을 털어 내지 못해 도리없이 섬기며 사는데, 하물며 북녘에서 좋으나 싫으나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를 향해 손뼉을 치며 사는 동포들은 어떠하겠습니까?』하면서 긴긴 세월 동안 정치사상교육으로 무장시킨 북한동포들의 의식세계를 남쪽 국민들의 잣대로 재면서 함부로 해석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통일이 절실하다는 것은 두 사람이 다 공감하는 바이지만 접근해 가는 방법은 극과 극이었다. 인구가 말했다.

 『그렇다고 공화국의 최고통치자가 죽고, 공식후계자인 지도자 동지에 의해 공화국 사회가 개방되어 남북관계가 교류와 협력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면 또 다른 변화가 올지는 모를 일이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공화국 사회는 2000만 동포들의 삶을 유지시켜 주고 있는 경제체제를 개선시키지 않은 채 동구 공산권 국가들처럼 사회전체를 개방하면 팽배하는 북녘 동포들의 기본 욕구폭발로 대변혁이 일어나면서 국가 자체의 존립의 문제가 기로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지도자 동지도 최고통치자가 된다 해도 함부로 사회는 개방할 수 없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님이 강조하시는 교류와 협력에 의한 통일은 공화국의 입장에서는 실현가능성이 없는 통일 방안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