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주인공의 독백과 비슷한 현상이 인구의 대화 속에서 은연중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출산휴가 이후부터 북녘의 탁아소에 위탁되어 보육되고 교육되는 어린 새싹들의 내적 세계가 지금 어떻게 형성되고 있으며, 그들의 심성이 결국은 무엇을 지향하며 어느 때 편안함을 느끼는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결국 그들은 우리와 한 피를 이어받은 배달민족 또는 동족이라는 언어로 불리어지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심성을 지닌 인간집단임을 알고는 무서움을 느꼈다.

 정동준 계장은 그것을 「북녘동포들의 정서적 이질화 현상」이라고 이름지어 학회에 보고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인구를 불러 앉혀놓고 그가 알아듣도록 타일렀다.

 『인구 네가 생각하는 세계를 내 주관대로 한정하고 결론 내리는 일은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일정한 시간이 흐를 때까지는 자꾸 저쪽과 비교하고 따지면서 맹목적으로 저쪽을 옹호할 생각을 하지 마. 북녘에서 요구하는 가치와 「11년제 무상교육 내용」은 그 사회에 살 때만 필요하지 국제사회에서 전 세계인들과 어깨를 겨누며 공존 공영하는 문명사회 속에서는 별 가치가 없는 교육이야.

 왜냐하면 북녘의 11년제 무상교육 내용은 보편적 가치를 따라 생활하면서 인류가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창조해 내자고 요구하는 교육이 아니라 북녘의 지배집단만 따르고 충성하다 죽어 달라는 교육이기 때문이야. 그런 것을 우리는 「주민 우민화 교육」이라고 부르는데 인구도 깊이 한번 생각해 봐. 북녘 지배집단의 정치적 행태에 희생자가 되어 고뇌하다 결국은 남쪽으로 넘어온 네가 지금 와서 북녘을 옹호해서 어떡하겠다는 거야?』

  『저의 부모형제가 살고 있는 땅이라서요. 제가 그 지경이 된 것은 지금 생각해 보니 저한테 전적으로 잘못이 있었던 것 같아요. 형님은 김일성 수령님을, 아니 북녘의 최고통치자를 무조건 죽일 놈이라고 욕하는데 저는 사실 그게 듣기 싫어요. 굳이 잘잘못을 따진 다면 수령 동지한테 잘 보이려고 밑에서 이간질하고 선동하는 간부들이 나쁘지, 수령 동지가 오늘의 북녘 땅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정동준 계장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다가 담배를 한 대 붙여 물었다. 문득 헐벗고 굶주리고 학대받던 동족 한 사람을 국민의 세금으로 먹여 살리면서 하루빨리 그가 이 땅에 뿌리박아 살도록 그와 아내가 보살펴주고 있는 게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치유 불가능한, 그리고 언젠가는 그 자신까지도 잡아먹으려고 으르렁거리는 이리 새끼 한 마리를 그가 막연한 인간애에 빠져 무한정 사랑을 주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회의를 느끼게 했다. 정동준 계장은 그 자신이 그런 회의감에 빠질 때가 제일 괴로웠다. 그러나 인구는 정동준 계장의 그런 심경도 눈치채지 못한 채 자신의 고민만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