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쪽에 살 때 뭐든지 숨김없이 말하는 버릇이 있어서….』

 인구는 계면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너, 지금 북한에 살고 있어? 여긴 임마, 네 발로 찾아온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야.』

 정동준 계장은 정신차리라는 듯이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인구는 이실직고하듯 또다시 머리를 긁었다.

 『전, 사실 이만큼 많은 자유는 원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자유가 주어지니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주체할 수 없습니다.』

 『헛소리말고 좀더 살아 봐. 한국의 대학생들이 왜 자유가 적다고 아우성치며 데모하는가를 알 게 될 거야?』

 인구는 그때 정색을 하며 가슴속에 묻어 둔 말을 꺼냈다.

 『형님, 저…데모하는 2∼3학년 애들 좀 따라다니며 구경 좀 하면 안 되겠습니까? 요사이는 데모를 어떻게 하는지 그게 몹시 궁금하고, 떼를 지어 와 하고 함성 지르며 거리로 몰려 나가는 것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행동하고 싶은 생각 있지요….』

 정동준 계장은 가슴이 꽈악 막히는 것 같아 침을 꿀꺽 삼켰다. 인구의 말을 듣고 있으니까 자신도 모르게 미친 듯이 박수를 치며 땀 흘리는 북녘 동포들의 모습이 영상처럼 뇌리를 스쳐 갔고, 핏발 선 눈빛으로 김일성의 교시를 낭송하며 열광하는 북녘 청년 당원들의 얼굴들이 인구의 얼굴 위로 포개어지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은 자유를 더 달라고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데모를 하는데 너는 지금 너에게 주어진 자유도 과분해 주체가

 곤란하다고 하면서 무엇을 요구하겠어? 요구할 게 있으면 후배들 꽁무니 따라다니며 외쳐 봐.』

 『뭐, 요구할 게 있어서가 아니라 최루탄 터지고 함성 지르며 그 안개 낀 거리를 뛰어가는 거 보니까 나도 모르게 저쪽에 있을 때 인민무력부 쌍방대항훈련 받던 생각이 나서요….』

 『그렇게 피가 끓고 체력이 남아돌면 인류가 어떻게 20세기 문명세계를 건설했는지 세계사 전집이나 한번 독파해.』

 『그거 읽으니까 저쪽에서 배웠던 혁명역사가 다 엉터리 같고, 그 엉터리 혁명역사를 2천만 북녘 동포들이 주야 없이 학습하는가 싶은 게 내 자신이 자꾸 이상해져요.』

 『그러면 그게 진실이냐?』

 『전부 다는 진실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근거가 있을 거 아닙니까?』

 인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동준 계장은 미국의 어느 흑인 작가가 쓴 고백록을 되씹었다. 그 고백록은 백인 밑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흑인이 백발이 된 뒤에도 백인 주인의 착취적 명언과 경구를 되뇌면서 지난 생활을 그리워하다가 끝내는 그 백인의 곁으로 돌아가 자신을 학대하고 착취하고 채찍질하던 백인을 섬기며 내적 불안과 갈등 없이 여생을 마친다는 심리소설 비슷한 고백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