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호 전도사 "종교사 연구중 오류 발견"
2007·2009년 두 차례 논문발표

   
 
"학부와 석사 때 신학을 공부해서 신학과 관련한 책자를 많이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했어요. 아 이건 바로잡아야겠다 생각했지요."

지난 2007년,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화도진'이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가 아니라는 논문을 발표한 박철호 기념탑교회 전도사는 "평소 지역향토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데다 전공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오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당시 존스와 같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발행한 책이 <코리아 리뷰>(The Korea Review), <코리아 리포지토리>(Korea Repository)입니다. 최성연 선생님 역시 화도진이라는 근거를 여기서 찾으셨던 거지요. 화도진 근처의 어떤 지역을 화도진으로 오역하신 겁니다."

박 전도사는 그러나 "최 선생님으로 인해 조약체결장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으므로 지역 향토사가로서 큰 역할을 하신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논문을 보면 '존스의 기록을 찾아보고 그 원문을 읽어본다면 이 같은 우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존스선교사는 조약체결지가 현재(1901년 당시)의 세무사 거주지 뒤쪽 언덕배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관아가 아닌 장소에 천막이 세워진 까닭도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을 최성연은 간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세무사를 '지방파유관'으로 번역했다.

결국 "이 번역상의 오류가 50년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라며 비판적 시선을 밝히고 있다.

학자들의 동행답사에 대한 의견에 대해서도 그는 "내가 뭐라고 할 얘기가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이번 발굴에 대한 그의 생각은 무엇일까.

   
▲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지가 화도진이라는 내용이 담긴 최성연 선생의<개항과 양관역정>.
"김성수 선생님의 D39필지의 정확한 장소 발견은 작지 않은 성과입니다. 인천지역사회에서 지역사를 논할 때 그 동안 감과 전설에 의존한 바가 없지 않습니다. 역사는 자료에 의하지 않으면 신빙성이 떨어지는 법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김 선생님이 확실한 자료를 찾아냈으니 더 이상의 이론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매치라고 봅니다."
 
박 전도사는 "나 역시 세관자료를 연구할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한 만큼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그렇지만 이후 개인적으로 목사안수 수업을 하느라 바빴고,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재론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자극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번 문제는 학자들이 볼 때는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고, 향토사학자들에게는 자료접근성이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논문 발표 뒤 계속 관심을 갖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개인적으로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되서 홀가분합니다."

목사를 하려면 사회경험이 많아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는 그는 신문기자, 사학자의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내년에 정식 목사안수를 받는다.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