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창조주의 입장에선 경외스런 발상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인간의 오만과 호기심은 고래로 그같은 시도를 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의식에 필요한 도구에 불과했었다. 그러다가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기계인간이 등장하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정밀하게 만들어진 로봇이 많은 분야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능과 기능은 어느 정도의 수준에 미친다고 하더라도 생명력 만큼은 어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로봇은 「일한다」는 뜻의 체코어 robota에서 어원하며 역시 체코의 극작가 차페크가 만들어낸 용어이다. 1920년에 발표한 그의 희곡 「로섬의 인조인간」의 통칭인데 차페크는 이 희곡을 통해 기계문명의 발달과 인간사회와의 관계를 풍자 비판한다. 기계인간은 인간과 똑같이 비록 육체노동과 정신운동을 감당할 수는 있으나 결국 인간적인 정서나 영혼을 가지지 못하며 일단 마모되었을때 폐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희곡의 발표로 로봇에 관심이 모아지고 발전에 자극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고도로 발전한 로봇은 인간과 똑같은 기능을 수행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실용화되고 있다. 이를테면 인간이 근접못할 용광로나 고층에서 인간을 대신해 작업을 처리한다. 정밀한 조립이나 수술과정까지 로봇이 맡아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무한하게 확산되고 있는 자동판매기는 물론 최근에 보도된 파리의 무인지하철도 로봇의 유형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원래 인명의 위험부담을 덜어주고 부족한 인력에 보탬을 주고자 등장한 기계인간으로 인해 정작 인간의 설 공간이 좁아지지 않을지 우려케 한다. 그리고 기계문명의 아이러니라 할까. 한낱 기우에 불과하다고 할 그런 현상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기계는 인간을 폐물화 시키고 말 것」이라는 에머슨의 말은 정곡을 찌른 예언이라 할 만하다.

 지금 개최중인 「인벡스 98」의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학생 로봇경연이라고 한다. 너무 기계에 얽매인 현실의 한 단면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