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지 사료 발굴 … 역사적 성과"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지 사료 발굴 … 역사적 성과"
  • 김진국
  • 승인 201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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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강옥엽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전문위원
'제3의 장소' 가능성 꾸준히 제기 보람
   
▲ 강옥엽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전문위원.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장소가 화도진이나 파라다이스호텔, 제3의 장소로 알려져 온 것은 그동안 사진이나 문서 등 구체적인 증거자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명확한 사료가 발굴된 만큼 체결장소에 대한 의문들이 한꺼번에 해소될 수 있게 됐습니다."


강옥엽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전문위원은 "많은 사람들이 개항기 미국과의 통상조약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귀중한 자료가 발굴돼 사학자로서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우리 나라 역사에 있어서 작지만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연이나 글 등을 통해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는 화도진도, 파라다이스호텔도 아닌 자유공원일대 제3의 장소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펴 온 주인공이다.

그는 <리뷰인천> 2010년 여름호에서 '조약이 체결된 장소는 해관 관리관의 사택이 있는 곳이라고 설명되고 있어 화도진에서 체결되었다는 기존의 입장은 재고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해관 관리관의 사택이 어디에 있었는지가 조미수호조약 체결 장소를 논의할 때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으로, 현재 파라다이스 호텔 아래 초기 해관자리 부근인지, 그보다 좀 더 올라간 자유공원 부근인지에 대한 것은 보다 정확한 자료를 통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리뷰인천> 2010년 여름호 118쪽)고 밝힌 바 있다.

"저보다 앞서 고 신태범 박사님도 조미통상수호조약 체결장소로 확인된 자리를 HLKX(극동방송국)이 있던 자리라고 언급한 바 있었어요."

강 위원은 또 제3의 장소라고 주장한 근거가 제물포조약 때문이라고도 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3개월 뒤인 그 해 8월 조선은 일본과 제물포조약을 맺습니다. 그 자리는 지금의 중구청 앞 제1은행자리였어요. 그때 일본이 이 곳에 군영을 설치했었지요. 그 때의 군영이라고 하면 천막을 치는 정도였지요."

그는 "일본이 조약체결 장소를 언덕에서 했다면 그에 앞선 미국 역시 인근 어디에서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 故 신태범 박사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라고 언급했던 HLKX. 인천 유일의 방송국이었던 이 곳은 1958년 12월23일 개국, 한국복음주의방송국으로 출범했다. 이후 1967년 극동방송국으로 이름을 변경했다가 나중에 서울로 이전한다. 사진은 1966년 스튜디오 모습으로, 지금은'탱고스튜디오'(구 라파치아웨딩홀·인천시 중구 북성동 3가 8-3)가 들어서 있다. /사진제공=조우성(주필)

"이번 발굴은 그동안 넘지 못했던 벽을 하나 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앞선 연구자들의 연구가 의미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 분들은 역사의 한 가운데 서서 선각자적 입장에서 지역을 바라본 분들입니다."

강 위원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실마리가 풀린 만큼 이제 지역 사회에서 다함께 올바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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