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골망 흔들면 필승"…"두뇌 플레이로 팀에 헌신"


"어! 그럼 천수형은 어쩌지…"

인천 유나이티드의 비상을 이끌고 있는 이석현과 한교원을 지난 5일 구단 휴게실에서 만나 "롤모델(role model)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각각 김남일과 설기현이라고 대답을 한 뒤 두 선수가 동시에 마주보며 한 말이다.

팀 동료이자 하늘(?)같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전설인 선배 3명 중 한 명만 쏙 빠뜨렸으니 걱정이 됐나보다. 그러더니 바로 덧붙인다.

"천수형은 정말 타고 났어요. 프리킥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아무리 따라해도 형처럼 되질 않아요. 언젠가 형을 뛰어넘고 싶지만 아직은 제가 너무 부족합니다."(이석현)

"세분이 워낙 선배라 처음엔 말도 걸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기현이 형이나 남일이 형, 그리고 천수 형을 보면서 자기관리 노하우나 어떻게 경기를 준비하고 뛰어야하는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 프로선수로서의 생존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후배들에겐 정말 최고의 선배죠."(한교원)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지켜보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던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이석현, 한교원은 이제 그들이 우러러만봤던 김남일, 설기현, 이천수 3인방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운동장을 누비며 어느덧 인천 구단의 기둥으로 성장했다.

팀의 주축으로, 최근 K리그 클래식 그룹 A를 확정 지은데 이어 앞으로 상위 스플릿에서 강팀들과 경쟁하며 아시아챔피언스 진출이라는 새로운 목표에 도전할 두 선수를 만나 올 시즌 인천의 비상을 이끈 비결과 앞으로의 각오를 들어봤다.


 

   
▲ 인천 유나이티드 이석현

■이석현



3라운드 주간 베스트·팀내 최다 득점

"상위 스플릿 확정 수원전 짜릿"



"인천에 와 2002년 월드컵 때 보던 대 선배님들도 만나 신기했고, 평소 그렇게 무뚝뚝하시던 아버지도 제가 프로선수가 되었다는 소식에 정말 기뻐하셨어요."

이석현은 올초 2013년 K리그 신인 1차 자유선발선수로 인천에 입단, 데뷔하자마자 3라운드 주간 베스트에 선정을 시작으로 올 시즌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고 있다.

게다가 공교롭게 이석현이 골을 넣은 경기에서는 인천이 지금까지 한번도 패하지 않으면서 팬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석현이 골을 넣으면 승리한다'는 '강한 믿음'이 생겨났다.

"처도 처음엔 몰랐는 데 팬들이 이야기를 해 줘 제가 골을 넣은 경기에선 우리가 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언젠가부터 골을 넣으면 이길 것같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근데 이 사실을 팀 내 다른 선수들은 잘 모릅니다. 팬들과 저만 알고 있죠. 하하"(실제 이 이야기가 나오자 옆에서 듣고 있던 한교원이 "정말? 처음 듣는 소린데…"라며 놀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석현은 영플레이어상(3년차 이내 23세 이하, 해당 시즌 K리그 전체 경기중 2분의1 이상 출전한 선수 중 가장 좋은 활약을 보인 신인에게 주는상으로 올해 신설)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솔직히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우리 팀에서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된다면 제가 못받아도 아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렇듯 지금까지 맹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이석현은 본인이 선취골을 뽑아 인천이 그룹A 진출을 확정짓는 데 밑돌을 놓은 지난달 28일 수원과의 25라운드 경기를 올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았다.

"상위 스플릿 진출 여부가 가려지는 수원전에서 첫 골을 성공시켰을 때 내가 골을 넣으면 승리한다는 '강한 믿음'이 떠올랐고, 이후 정말 디오고와 교원이가 한 골씩 추가해 3대1로 경기를 끝내고 나니 기쁘기도 했지만 소름이 돋았어요."

이런 이석현에게 팀 내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동료는 김남일과 이천수다.

"남일이 형은 우리에게 경기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형이 경기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말하지 않아도 깨달음 같은 게 생기죠."

"천수 형에게는 공식 연습 후에 프리킥을 배우고 있는 데 정말 따라갈 수가 없을 만큼 공의 궤적이 달라요. 타고 난 것 같아요. 언젠가 천수 형보다 더 잘 찰 수있는 날이 올거라 믿고 연습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홍명보호 예비 엔트리에 올랐다 탈락했던 일을 거론하자 "전 아직 젊기 때문에 조급하지 않아요. 우선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에 모든 것을 걸고, 이후 지금까지 그래왔듯 인천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계속 해낸다면 대표팀 승선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 인천 유나이티드 한교원

■한교원



"작년 슬럼프 불구 중용 … 감독님께 감사"


성실함 무장·ACL 진출 목표



"저는 소위 명문학교 출신이 아닙니다. 좋은 환경에서 환호를 받으며 축구를 해본 적이 이전엔 없었고 밑바닥도 겪어 봤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간절함이 있는 것 같아요."

"인천에서 뛰면서 많이 성장했습니다. 입단 첫해에는 열심히 하고 싶어 그냥 멋모르고 뛰기만 했는데 기현이 형과 남일이 형을 만나면서 점차 경기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졌고, 이젠 팀 플레이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생각하는 축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광주의 한 2년제 대학에서 축구를 했던 한교원은 2011년 초 5순위로 당시 허정무 감독에 의해 인천에 입단했고, 입단 첫 해부터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이제는 인천의 대들보로 성장했다.

한교원은 이 대학 출신 중 유일하게 1부리그(K리그 클래식)에서 뛰고 있는 프로축구선수고, 후배들에게는 '선구자'다.

당시 4년제 대학으로 편입했던 동료들과 달리 프로를 선택한 한교원은 '열심히 하다보면 기회는 찾아온다'는 진리를 새삼 후배들에게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아픈 시간이 있었다.

그를 뽑은 허정무 감독이 지난해 초 물러나고 특별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던 한교원을 두고 팀 내 일각에서 "경기력이 바닥"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괴로왔고, 힘들었다. 하지만 당시 대행을 맡은 김봉길 현 감독의 믿음이 한교원을 다시 팀의 기둥으로 거듭나게 했다.

김봉길 당시 감독 대행은 여전히 그에게 신뢰를 보이며 중용했고, 드디어 지난해 7월 15일 한교원은 서울전에서 혼자 두골을 넣으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 김 대행의 믿음에 보답했다.

송영길 구단주는 크게 기뻐했고, 이를 계기로 김봉길 감독은 바로 다음날 대행 꼬리표를 뗄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해 서울전이 한교원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다.

"서울과 경기가 있기 며칠 전 '한교원 요즘 왜 나오나'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정말 많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끝까지 믿어주며 경기에 내보내 준 감독님에게 너무 감사드리고 싶어요. 그때 감독님이 저를 믿어주지 않았다면…"

'국가대표나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묻자 그는 "욕심이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라며 일단 손사래를 쳤다.

"아직 신인이고 실력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해외 진출까지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진 않아요. 일단 K리그에서 소처럼 뛰어다니며 골 많이 넣어 인정받고 싶습니다."

"멀리 내다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눈앞의 목표(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가 우선입니다. 그렇게 한단계씩 밟아나가다 보면 기회는 자연스럽게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이종만기자 malema@itimes.co.kr


이석현
·1990년 6월13일생
·선문대 졸업
·2013년도 입단
·2013시즌 성적: 팀내 득점 1위(7점), 도움 3위(2개)
·롤모델: 김남일, 이니에스타

한교원
·1990년 6월15일생
·조선이공대학 졸업
·2011년도 입단
·2013시즌 성적: 팀내 득점 3위(5점), 도움 3위(2개)
·롤모델: 설기현, 웨인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