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와 기영의 관계는 그 해 가을부터 하루가 다르게 달아올랐다. 인구는 데이트만 하고 돌아오면 순진스럽게 정동준 계장 내외에게 어디어디를 다녀왔고, 어떤 음식을 먹었으며, 기영의 아름다움과 매력이 어디에 있다는 등 사선을 넘어온 만 26세의 남자답지 않게 곧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 주곤 했다.

 『형수님! 이 빨갱이 출신 곽인구도 꽃다운 남반부 처녀하고 뽀뽀를 한번 해봤다 이 말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영주는 이 사람들 빠르기도 하다는 표정이면서도 뭐든지 털어놓고 싶어하는 인구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는 맞장구를 쳤다.

 『에이, 삼촌! 분위기 죽게 뽀뽀가 뭐예요. 그때는 주체의식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키스」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키스·키스·키스 하고 한 열 번만 계속해 봐요. 그만 입술과 혀가 딱 달라붙어 말도 잘 안 나올 거예요.』

 꿈보다 해몽이 더 그럴 듯하다는 말처럼 「키스」라는 낱말의 의미보다 아내의 해석이 더 농탕져서 정동준 계장은 어이없이 웃고만 말았다. 그런데도 인구는 순진스럽게 송영주가 시키는 대로 웅얼거리고 있었다.

 『키스·키스·키스…어, 진짜 형수님 말씀처럼 혀와 입술이 달라붙어 버리네?』

 『인구 삼촌! 그게 바로 키스의 진미예요. 다음부터는 주체의식 어쩌구 하면서 뽀뽀란 말 쓰지 말고 꼭 키스란 말을 쓰세요. 언어는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에요. 물을 건너왔든 수입해 왔든 인간의 감정과 뜻하는 바를 가장 진실하게 전달해주는 낱말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해요. 그런데 거기에 왜 정치적인 주체의식이 달라붙어야 해요? 키스는 키스답게 잡스러운 것 다 걷어내고 입술과 혀가 딱 달라붙어야 되는 거예요. 아시겠죠, 제 말 뜻을?』

 송영주는 일장 연설을 하듯 자신의 키스론을 늘어놓았다. 정동준 계장은 이 여자가 이제 보니 못하는 말이 없네 하고 송영주를 쳐다보다 웃고 말았다. 인구는 그런 분위기에 취해 부끄러움도 모른 채 익살을 부리다 『하지만 형수님! 그거는 미제가 쓰는 말 아닙니까?』 하면서 정동준 계장 부부를 또 웃겼다.

 그렇게 정동준 계장 부부와 웃고, 농담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인구는 정서적으로 전혀 결함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열 시간 만 독방에 처박아 두었다 데리고 나오면 심한 불안에 뜨는 경향을 보였다. 송영주는 인구의 그런 점이 안타까워 밤에 잘 때도 현관에 놔 둔 전화를 인구 방에 들여놓으면서 잠이 오지 않을 때는 기영 씨한테 전화라도 걸어 밤새 밀어를 나누라고 사랑하는 방법까지 일러주었다. 인구는 그때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송영주를 잠깐씩 쳐다보곤 했다. 정동준 계장은 인구의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 다시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임마! 사내가 좀 듬직한 구석도 있어야지, 약혼자하고 데이트하다 키스한 것까지도 일러 바쳐? 그런 거는 너 혼자만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혼자 있을 때 그려보는 거야.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