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얼문화재단 지음, 새얼문화재단
   
 


생협·농민운동 등 공동체적 성격 기능 재조명

분야별 보고서 형식 엮어 … '함께하는 삶' 주목



<황해문화> 가을호는 '우리 시대 공동체운동의 양상과 의미'를 특집으로 꾸몄다. 이번 기획의 시작은 '각자도생(各自圖生) 사회'라는 키워드에서 출발한다.

각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 '공동체운동 보고서' 형식으로 우리가 지금 과연 어떤 사회를 갈구하고 있는가를 더불어 삶, 호장기택(互藏其宅)의 상호도생(相互圖生)의 그림들을 펼쳐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상태 자체에만 주목하는 것이 기획의 요체는 아니다. 그보다는 새로운 정치사회의 형성 가능성을 진맥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김형미((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상임이사)의 '공동체운동이란 무엇인가-한국생활협동조합운동을 중심으로'는 최근 생활협동조합의 활기 속에서 생협을 공동체운동의 하나로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그 역사적 기원에 대해 차분히 정리하면서 문제의 본연에 접근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현재 아이쿱생협, 두레생협, 한살림 등 여러 형태의 생협이 각광받고 있지만 그 운동의 특성상 경제적 이해관계에 치중한 면이 크다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에너지, 식량, 보건의료와 돌봄처럼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에서는 영리를 좇기보다 이용자 중심의 협동조합을 구성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한국 생협은 시민운동의 토양 속에서 경제적인 인프라를 갖추어 온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역 속에서 식량, 보건의료와 돌봄, 에너지, 교육 부문의 협동을 구축할 때 역량이 배로 발전하고 새로 탄생하는 협동운동조직, 또는 공동체운동의 플랫폼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전망하는 것이다. 특집 두 번째 글인 박찬숙의 '어느 원조귀농민의 30년 촌살이 보고서'는 다른 글들과 달리 각별한 의미와 두께를 갖는다.

박찬숙은 지난 1980년대 목적의식적인 농민운동 1세대에 속한다. 1980년대부터 농촌에 하방하여 농민으로의 이른바 계급적 이전을 겪고 그 입지에서 농민운동의 지역적 기반을 만들고 전국적 결집을 주도하고 수없이 좌절한다. 또 유기영농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부침을 겪으면서 다시 길을 찾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30년차 원조 귀농인이라는 점에서 30년이라는 시공간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학교급식 실시, 농협 복수조합원제 실시, 여성후계자 가산점 부여, '여성농업인센터' 설치, '여성농어업인육성법' 제정 등 여성농민운동의 자랑스러운 성과물들은 운동의 계급적 성격을 관철한다.

위성남(마포마을넷 운영위원장)의 '도시 속에서 함께 살아남기―성미산마을'은 성미산마을의 초기 기원인 공동육아활동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성미산마을공동체운동으로 발전시켜온 입지에서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탄도시에서 마을공동체의 형성과정을 궤적화한다.

그 가운데 성과와 전망을 차분히 제기함으로써 박찬숙의 글과 대비지점에 놓인다. 익명이 불가능한 농촌에서의 스며듦과 달리 독자성을 인정한 수평적 관계고리의 지향으로 도시 코뮨의 문제를 사고하게 하는 것이다.

위성남은 성미산마을의 주민이 되는 것은 '접속'과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성미산마을 주민다운 되먹임이다. 자신의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자신의 가치대로 선택하는 주체의 실천하는 '당사자주의', 성미산마을은 소수 몇 사람의 기획물이 아니라 수많은 크고 작은 커뮤니티들의 당사자들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성남은 성미산마을 운동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성과를 다른 '지역사회'의 실체에 대한 발견과 경험으로 꼽는다. 성미산마을에 대한 관심과 역량의 집중을 지역에서 다양한 모습과 규모로 독자적인 커뮤니티가 형성 발전되도록 조력하는 힘으로 전화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 글의 결론은 당연한 행로일 것이다.

유진수(희망을만드는마을사람들 공동대표)는 '인천 마을만들기 운동이 걸어갈 길'을 통해 <황해문화>가 터한 인천이라는 지역기반을 돌이킬 때 현안으로서의 공동체운동의 전환을 역설한다. 유진수는 최근 지자체 중심으로 마을만들기운동이 하향식으로 추동되고 있지만 인천지역 마을만들기의 역정이 1970년대 도시빈민의 생존권, 주거권을 지키기 위한 집단적 활동에서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그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적 특성으로부터 현지주민들의 주체적 해결과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천은 아파트 위주의 재개발사업이 지속되면서 심각한 도시문제를 양산해왔다는 점에서 재개발로 인한 주민간 갈등과 대립, 아파트 위주 개발에 따른 저층주거지역민들의 소외감, 공동주택의 공동체성 회복과 같은 현안문제 속에서 재개발사업이 아닌 지역정체성이 있고 공동체성이 회복될 수 있는 주민자치가 살아있는 마을만들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최진석(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대표)은 '지식공동체의 조건은 무엇인가 - 수유+너머의 실험으로부터'에서 새로운 사회적 조건에서 지식의 자기정향과 구성방식의 문제로부터 수유+너머의 '성공'과 전환을 성찰한다.

수유+너머의 대안적 연구공동체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지식생산메커니즘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서 교육과 연구의 차원에 국한된 실험만이 아니라 지식이 일상을 꾸리면서 타인들과의 공동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통로임을 발견한 데서 그 진정한 의미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도와는 독립적으로 특화된 지식을 만들면서 탄탄한 조직력까지 갖춘 단체들이 전국에 걸쳐 설립되고 활동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며 수유+너머의 분화라는 실패이자 실험을 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라 '다른 것의 시작'의 기점으로 잡고자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이번 호 비평글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특집의 문제인식을 보완하는 의미를 온전하게 구현하고 있다.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