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정동준 계장은 인구를 보며 물었다. 인구의 눈에는 끈끈해 보이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인구는 눈물을 닦으며 정동준 계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잠도 안 오고 해서 형님처럼 18번으로다 쫘악 한번 뽑아 봤죠, 뭐…근데 형님, 오늘은 왜 이렇게 달이 밝죠?』
「김일성 장군의 노래」 따위나 흥얼거린다고 면박을 주려다가 인구의 얼굴이 유난히 향수를 느끼는 것 같아 정동준 계장은 우스갯소리로 돌리고 말았다.
『보름이니까 밝지, 임마! 같이 놀자고 할 때는 뒤로 물러앉더니 이게 무슨 짓이야, 청승맞게?』
『형님, 월남한 지도 4년이 넘었는데 「김일성 장군의 노래」는 왜 아직도 잊혀지지 않죠? 인간 김일성이를 생각하면 내 인생 망쳐 놓은 사람처럼 생각되어 어느 때는 금방 죽이고 싶은 살기도 치솟는데 인민학교 시절 야영훈련 나가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부르며 꿈을 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요. 향수란 이런 것이에요?』
정동준 계장은 혈육의 가슴앓이를 들었을 때처럼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정동준 계장은 송영주를 불러 다시 술상을 차리라고 했다. 그때 인구는 침대에서 내려와 방바닥에 편하게 앉았다. 정동준 계장이 마주 앉으며 물었다.
『다시 가고 싶니?』
『다시 가고 싶다기 보다는 어린 시절 내가 전쟁놀이를 하면서 꿈을 키웠던 놀이터를 잃어버렸다는 게 오늘 같은 날은 몹시 가슴 아픈데요….』
『너만 그런 게 아냐. 나도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의 갯벌과 어머니마저 다 잃어버렸어. 괜한 생각말고 술이나 한 잔 더 마시고 푹 잠이나 자….』
정동준 계장은 인구에게 담배를 권하며 한 대 붙여 물었다.
『형님이야 어릴 때 뛰어 놀던 갯벌이 뭍으로 변했다지만 고속버스 타고 너댓 시간만 달려가면 고향 땅 언저리라도 보고 올 수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너는 안 그러냐, 임마! 정 고향 땅 언저리라도 보고 싶으면 내일 강화 고려산에 올라가 쌍안경으로 네 고향 땅이나 실컷 바라보다가 오려무나….』
그때 송영주가 술상을 차려 들고 왔다. 자개상 위에는 맥주 세 병과 오징어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송영주는 구워온 오징어를 쭉쭉 찢어놓으면서 인구를 보고 흉을 보듯 입을 삐쭉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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