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 평전 … 소설·르포 혼합 - 철저한 고증·주석 뒷받침
   
 


<조봉암 평전-잃어버린 진보의 꿈> 이원규지음. 한길사. 632쪽, 2만2000원


남북 분단의 이념 대립 속에서 진보정치를 꿈꿨던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 1899~1959)의 생애와 정치 사상을 담은 <조봉암 평전-잃어버린 진보의 꿈>(이원규·한길사)이 발간됐다.

조봉암은 한국 근현대사의 이단아다. 그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투쟁해 장기간 옥고를 치른 독립투사였다.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했으나 광복 후 전향해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서 농지개혁을 성공시켜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은 공로자였다.

그러나 이승만 독재에 맞선 일로 사형선고를 받고 법살당했다.

그리고 반세기 동안 어두운 역사 속에 누워 있다가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햇빛 속으로 나왔다.
우리나라 진보 정치는 남북 대치 상황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체제 아래서 제대로 꽃피울 수 없었다.

때문에 우리나라 최초로 진보라는 이름을 쓰고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의 시도는 획기적이었다.

조봉암이 구상한 진보정치는 그가 진보당 창당대회 개회사에서 밝힌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이 없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서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잘 살수 있는 세상, 이것이 한국의 진보주의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라는 말에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조봉암은 일제강점 직전 인천 강화도의 한미한 농가에서 태어났고 정규학력은 보통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그는 고학으로 세이소쿠영어학교와 모스크바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잠시 수학하기도 했다.

강화도의 3·1만세운동에 참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공산주의가 조국 독립의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해 조선공산당 창당의 주역이 됐으며, 상하이 망명 투쟁 중 체포당해 7년간 신의주형무소에 수감됐다.

8·15광복 후 좌익계의 권력욕이 국가를 위해 옳지 않다고 느껴 우익으로 전향했으며,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서 농지개혁을 입안했다. 조봉암 덕분에 한국은 세계 최고수준의 토지 균등성을 빠른 속도로 이룩해냈다.

조봉암은 국회부의장을 지내고 대통령선거에서 두 번이나 차점 낙선을 한 거물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젊은 날 조국 독립을 위한 최선의 방편으로 선택했던 공산주의가 전향한 뒤에도 원죄처럼 그를 따라다녔고,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 정책에 맞서 평화통일을 주장한 것이 빌미가 돼 국가변란과 간첩죄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사형을 당했다.

그의 생애는 식민지 피지배와 민족분단으로 얼룩진 한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다.

이번 <조봉암평전 - 잃어버린 진보의 꿈>은 평생 리얼리즘 소설을 써온 작가 이원규가 쓴 책이다.

일반 평전형식과 달리, 소설과 르포가 섞여 있으면서도 철저한 고증과 주석을 뒷받침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가 이원규는 균형된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건조하지 않게 조봉암의 인간미와 이상을 전달한다.

이승만 대통령과의 건곤일척의 대결, 은밀한 조선공산당 창당과 조봉암의 모스크바행 밀사, 냄새를 맡고 그를 추적하는 일경의 기밀 보고서들이 치밀한 서사구조로 짜여 있으며, 위기를 맞을 때마다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솟아오른 조봉암의 분투가 판화처럼 선명하게 복원되는데 이는 오랜 시간 리얼리즘 작가로 활동해온 이원규였음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봉암의 첫사랑이자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었던 김이옥의 이야기,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상하이에서 행방불명된 아우 조용암, 일본 유학시절에 처음 만나 그를 현실참여와 공산주의로 인도한 동지 김찬, 창랑 장택상과의 좌·우를 뛰어넘은 우정 등, 죽산에 관한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져 마치 대하역사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저자 이원규는 죽산의 제헌의원 선거구이자 정치적 활동의 기반이었던 인천 출신이다.

그는 죽산을 알기 위해 학연과 지연, 혈연 등 온갖 인맥을 총동원하여 죽산 주변 인물들에게 생생한 증언을 얻어냈다.

끈질긴 추적과 인터뷰, 사료분석으로 자료수집에만 2년 반, 집필에만 3년이 걸려 조봉암이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분단사를 완성했다.

/조혁신기자 mrpen68@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