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영이가 와 기래 늦는가? 친구 누구래 만난다고 집을 나갔네?』

 정남숙은 이건 또 무슨 얄궂은 소리인가 싶어 딸을 바라보며 물었다. 인숙은 미처 그것은 물어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정남숙은 가슴 한켠에 또다시 수심이 깔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길게 한숨을 내쉬며 황망해하다 큰딸과 같이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갔다.

 『아버지는 들어오셨네?』

 정남숙은 아파트 나들문을 열면서 딸을 보고 물었다. 인숙은 『조금 전에 들어오셨다』고 대답하면서 어머니와 같이 아파트 현관(거실)으로 들어갔다. 그때 세면장에서 손발을 씻고 나오던 곽병룡 상좌가 밖에서 들어오는 모녀를 보고 물었다.

 『인영이는 어데 있는가? 와 보이지 않네?』

 『아까 저녁 무렵에 친구 만나러 간다고 집을 나간 아이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인숙이가 혼자서 속을 끓이고 있습네다. 이럴 땐 어데다 연락해보면 좋카시요?』

 정남숙은 세대주와 같이 살림방으로 들어가 갈음옷(외출복)을 벗어 걸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며 물었다. 곽병룡 상좌는 마른 걸레로 발에 묻은 물기를 닦은 뒤, 걷어올린 아랫도리 가랑이를 펴서 내리다 안해를 바라보며 버럭 성을 내었다.

 『객지에 나가 공부하다 오랜만에 집에 왔으면 아버지 오마니가 집에 들어올 때까지라도 지그시 들어앉아 책이라도 보면서 부모한테 인사부터 올릴 생각을 해야디… 아 새끼가 돼먹지 않게서리 첫날부터 어데를 길케 싸돌아 다닌다고 아직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게야?』

 『아, 나도 아침에 나갔다 이자 집에 들어온 사람인데 그걸 어드렇게 압네까? 어머님 들으면 놀라겠소, 좀 조용조용 이야기 하시라요. 와 길케 역정부터 내고 기래요?』

 정남숙은 느닷없이 화를 내는 세대주의 모습이 이상해 덩달아 언성을 높였다. 곽병룡 상좌는 그때서야 이래저래 쌓인 내적 울분 때문에 자신의 정서가 어데론가 쫓기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꺼풀에 경련이 일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진정시키기 위해 담배부터 한 대 빼물었다. 그리고는 불을 붙여 두어 모금 담배연기를 들이마시며 가슴속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는 듯한 울분을 담배연기에 실어 밖으로 내뱉고 나니까 자신이 왜 안해한테 화를 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늘따라 유난히 초췌해 보이는 정남숙의 표정이 눈에 거슬렸다. 직장에서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었다는 말인가. 곽병룡 상좌는 화를 낸 것을 사과하듯 정남숙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데 아퍼? 림자는 얼굴색이 와 기래?』

 정남숙은 톡 쏘듯 한 마디 내던진 말에 세대주가 이내 기가 꺾기면서 자신의 안색을 걱정해주자 자신도 모르게 서러운 마음이 밀려와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생활총화 나갔다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져서 기렇시오. 길치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니까니 신경 쓰지 마시라요.』